겨울산행 - 흰 눈밭 사이로 새해를 오른다
(중앙일보 발췌)

한라산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은 하얀 적막감 속에 잠들어 있다. 흰눈으로 축 늘어진 나뭇가지
에는 설화(雪花)가 솜사탕처럼 피어올라 '동화의 나라'를 연출한다. 신(神)이 천상(天上)에
빚은 조각품인양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찬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빙화(氷花.쌓였던 눈이
얼면서 얼음 알갱이가 가지에 매달린 것)가 피어난다. 하얀 능선에 햇무리가 비추면 상고대
(밤새 기온이 급강하해 공기 중의 수분이 나무에 달라 붙은 현상)에 반사된 햇빛은 너무
눈부시다.

서해를 건너 3백60여개의 오름(기생화산)을 빠져나온 매서운 바람도 백록담에 이르러 눈보라를
일으키며 매서움을 누그러뜨린다. 바람에는 하얀 빛깔이 있고 소리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난다.
겨울 제주의 모습이다.

제주 사람들의 애환을 지켜 본 한라산은 민족의 영산. 정상에는 지금도 사슴의 슬픈 전설이
살아 숨쉰다.

힘들여 올라온 정상에서는 성산포가 눈아래 펼쳐지며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마라도와 전설의
섬 이어도가 손짓한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제주시 너머로 어렴풋이 추자도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은 길이 끝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등정(登頂)주의의 창시자인 영국의 산악인 앨버트 F 머메리의 말이다. 이처럼 힘들게 오른 산정에
서 많은 사람들은 떠오르는 아침 해에 새해의 염원을 담는다. 지난주 강원 산간지방과 제주 한라산
에는 폭설이 내렸다. 특히 지난 주말 한라산에는 신들의 조각품을 감상하려는 3천여명의 등산객
발길이 이어졌다.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네가지 코스가 있다. 그중 영실과 어리목코스는 윗새오름(1천7백m)까지
오를 수 있으며 정상을 밟으려면 성판악이나 관음사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중 성판악(7백50m)
은 차량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휴게소로 산행하기가 관음사 코스보다 쉽다.

성판악에서 정상까지는 약 9.6㎞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곱게 핀 등산로를 따라
2시간30분 정도 오르면 사라악 대피소(1천2백m). 여기서 진달래 대피소까지 1시간이 더 걸린다. 진달래
대피소부터 정상까지는 상고대가 펼쳐져 겨울 한라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정상까지는 1시간여가 소요된다.
특히 진달래 대피소부터는 등산로의 경사가 가파르다.

백록담을 왼쪽으로 끼고 20여m를 가면 관음사 코스가 시작된다. 앉아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왕관릉서 바라보는 서북벽의 설경은 겨울 한라산의 백미. 하산길은 왕관릉~용진각 대피소
~용진굴~개미목~탐라계곡을 거쳐 관음사입구 공원관리소로 연결된다.

정상 부근은 약 1m의 적설량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등산로에서 한발짝만 옆으로 비켜도 허리
까지 눈이 찰 정도로 발이 빠진다. 운동화나 구두차림에 겨울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등반하는 관광객들이 눈에
쉽게 띄는데 여간 위험하지 않다. 아이젠과 스패츠는 필수품. 이밖에 여벌의 옷과 양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라산 등반은 왕복 9시간 이상 소요된다. 시간별로 등산로입구와 대피소에서 입산을 통제한다.
성판악 휴게소나 관음사에서는 오전 9시 이후, 진달래 대피소와 용진각에서는 밤 12시 이후부터 출입이 불가능
하다. 한라산국립공원 입장료는 1천3백원. 문의=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64-742-3084).

한라산 등반은 1박2일~2박3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제주도 숙소를 전문으로 예약해 주는 사이트인 숙소닷컴
(http://www.sukso.com)에서는 항공과 숙소(펜션)를 묶은 저렴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항공+펜션의 1인당
2박3일 요금이 12만5천원으로 매주 수요일 출발한다.이용 고객에게는 GM대우의 1천5백㏄ 신차 라세티를
보험료(1일 1만5천5백원)만 받고 제공한다. 064-711-8290.

지리산

1천m급 봉우리가 20여개나 있다. 그 사이로 뱀사골.피아골.칠선골 등 숱한 계곡이 부채살처럼 뻗어있으며
넓은 만큼 눈경치도 제각각이다. 천왕봉(1천9백15m)을 오르는 코스는 6종류. 그중 지리산의 풍광을 마음껏
조망할 수 있는 종주코스는 눈보라와 바람이 심하고 적설량이 많아 철저하게 준비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중산리계곡이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당일이나 1박2일 산행기점으로 널리 이용된다. 천왕봉은
매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산악인들이 몰린다. 장터목이나 로터리산장에서 잠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으므로 만반의 준비를 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지리산국립공원=051-972-7771.

설악산

등산객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청봉에서 일출을 맞기 위해 밤을 새워 오른다. 대청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붉은 불기둥을 바다에 드리우는 모습이 장관이다.

대청봉을 오르는 오색.천불동.수렴동.서북능선 등의 코스 중 오색.천불동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오색~대청봉
구간은 4~5시간이 소요된다. 눈덮인 겨울에는 소청봉~희운각 구간이 가장 위험하다. 양폭산장~귀면암, 권금성은
설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지난주 설악산은 오색~대청봉 구간 10cm 정도, 천불동 계곡 1m 이상 눈이 쌓여
있다. 설악산국립공원=033-636-7700.

태백산

산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산의 나라'다. 특히 태백의 주목은 동해에서 뜨는 해와 달의 정기를 모아 천년의
그리움을 잉태한다. 매서운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흰옷을 걸친 황홀한 상고대가 등산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태백산의 등산로 중 등산객들은 당골.백단사.유일사 코스를 즐겨 찾는다. 유일사 코스는 사찰까지 임도가 뚫려
정상에 오르는 최단 등산로며 2시간의 발품을 팔면 장군봉에 오를 수 있다.

장군봉을 거쳐 천제단에 이르면 하산길이 망경대~반재를 지나 당골로 이어진다. 태백산 등산로에는 10cm의 적설량을
보이고 있지만 나락의 눈은 바람에 날아간 상태다. 산행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태백산도립공원=033-553-5647.

김세준 기자 <sjkim@joongang.co.kr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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