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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지가 좋아야 똑똑한 아이를 갖는다형산 정경연 선생의 정통풍수지리에서 퍼 온 글입니다..
잉태지(孕胎地)란 부부가 관계를 맺어 아이를 갖는 곳을 말한다. 처음 음양이 합하여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다. 이때는 하늘의 기운인 천기와 땅의 기운인 지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부부가 합방하는 날짜를 택일했고, 산천지기가 수려한 곳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날짜를 택일함은 좋은 천기를 받기 위함이고,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은 좋은 지기를 받기 위해서였다. 처음 정자와 난자가 착상을 할 때 좋은 기를 받아야 똑똑한 아이가 잉태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조기교육열풍이 말해주듯 어린아이를 키우는 정성은 유별나다. 심지어 태아 때부터 태교(胎敎)를 시킨다. 태교의 목적은 올바르고 똑똑한 아기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옛날 조상들은 임신 전 태교도 중요시하였다. 즉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갖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실하게 하고, 부부가 합방할 시간과 장소를 가렸던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임신 전에 부부가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자세히 적혀있다. 꺼리는 장소에서는 부부가 잠자리에 함께 들지 말라고 했으며, 바깥 날씨가 고르지 못할 때도 잠자리를 함께 하지 말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불빛이 비치는 장소나 노천, 달과 별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부부관계를 금해야한다고 했다. 또 큰비 오는 날, 천둥이나 벼락치는 날, 안개가 몹시 끼는 날, 일식과 월식이 있는 날, 땅이 진동하는 날, 과식했을 때나 허기졌을 때, 술을 마셔서 정신이 혼미할 때 등은 피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임신 때 태교와 출생 후 양육 및 교육에 대해서는 중요시한다. 그러나 임신 전 태교인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깨닫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요란스러운 결혼식후 복잡한 신혼여행지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맺는 부부관계는 피해야 한다. 이때 생긴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조상들은 잉태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전설이나 설화로 만들어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나 그 중에서 율곡 선생과 맹사성 선생의 잉태에 얽힌 전설을 소개한다. 큰 인물은 하늘과 땅의 좋은 기운을 받는데서 잉태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설화다.
율곡 선생의 잉태지 '판관대'
영동고속도로 장평인터체인지에서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봉평 쪽으로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판관대(判官垈)'라는 기념비가 서 있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로 바로 율곡 선생의 잉태지다. 탄생지는 강릉 오죽헌이지만 부친인 이원수와 모친인 신사임당이 관계를 맺어 선생을 잉태한 곳은 바로 이곳이다. 판관대란 이원수의 관직이 수운판관(水運判官)이었던 데서 연유하여 판관이 살았던 집터라는 뜻이다.
이원수와 신사임당이 혼인을 하여 처음 이곳에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그러나 곧 이원수는 지금의 인천지방 수운판관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났다. 얼마 후 그는 부인을 그리워한 나머지 말미를 얻어 이곳의 본가에 오던 중이었다. 대화면 반정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피로하여 하룻밤 유숙하려고 길가의 주막에 들었다.
마침 주막의 주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된 과부였다. 그날 따라 손님이 없는지라 깜박 졸다가 꿈을 꾸었다. 커다란 용 한 마리가 가슴에 안겨오는 것이었다. 꿈을 깬 주모는 놀랍고 이상하여 일어나 곰곰이 생각에 잠기었다. 이는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태몽으로 하늘이 자신에게 은혜를 내리는 거라 여겼다. 그러나 곧 자신이 과부처지라는 것을 알았다. 꿈이 아까운 나머지 남편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그때 이원수가 주막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얼굴에는 비범한 서기가 서려있었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잘 차린 주안상을 들고 손님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하룻밤을 정을 맺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재차 애걸하자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하고 야단을 치고는 바로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한편 사임당 신씨는 친정인 강릉의 오죽헌에 머물고 있었는데, 잠깐 잠을 자는 사이 동해의 커다란 청룡이 가슴에 가득히 안겨오는 꿈을 꾸었다. 범상치 않은 꿈이라고 느낀 신사임당은 급히 짐을 챙겨 봉평 본가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보니 남편 이원수가 와 있었다. 그 날밤 부부는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그로부터 사임당은 율곡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도밤나무의 설화와 율곡
오랜만에 아내와 잠자리를 한 이원수가 며칠 집에 머물려고 하자 신사임당은 "나라에 녹을 먹는 사람이 어찌 한가로이 집에서 쉴 수 있느냐"며 빨리 임지로 떠나라고 말했다. 어제 밤과는 다르게 그 표정이 냉엄했다. 부인의 말이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직은 신혼의 펄펄한 나이가 아닌가.
임지로 돌아갈 때 그 주막집을 지나게 되었다. 주모의 애절한 하소연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또 부인에게 못다 푼 회포도 풀 겸 주막에 들렸다. 그리고 주모에게 전번의 일을 사과하고 정을 맺기를 청했다. 그랬더니 주모는 정색을 하며 거절을 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저번에 쇤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룻밤을 모시고자 한 것은 비범한 자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오. 그때는 판관나리의 얼굴에 서기가 서려있었으나 지금은 그 서기가 다 없어졌구려. 아마 부인에게 다 쏟아 부은 것 같소. 이제 껍데기만 남았으니 그 뜻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길에 댁에서는 비범한 아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만 안된 것은 몇 해 안가 아이에게 호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이원수가 당황하다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호환을 면할 방법을 물었다. 주모는 "집으로 돌아가 뒷동산에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어놓으시오. 그리고 몇 년 후 어느 스님이 찾아와서 아들을 데리고 간다고 하면 나도 공을 쌓았으니 그럴 수는 없다고 하시오. 무엇으로 공을 쌓았냐고 물으면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었다고 하시오. 그러면 호환을 면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판관은 급히 돌아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어놓고 임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열 달 후 율곡이 탄생하였으며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아들을 시주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원수는 짚이는 것이 있어 "나도 공을 쌓아 놓은 것이 있으므로 아들을 시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그러면 공을 쌓은 것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밤나무를 심어놓은 곳으로 스님을 안내했다. 스님은 밤나무를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1천 그루에서 한 그루가 모자랐다. 그러면서 "공이 모자라 아들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원수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토리 나무 하나가 불쑥 "나도밤나무요"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이 거대한 호랑이로 둔갑하더니 혼비백산 도망하였다. 이때부터 도토리 나무를 '나도밤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율곡(栗谷)이라는 선생의 호는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좋은 태몽을 꾸었을 때 좋은 장소에서 부부관계를 맺어야 비범한 인물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꿈을 꾸었다한들 판관대와 같은 좋은 자리가 아니었으면 과연 율곡 선생과 같은 큰 인물을 잉태할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 선생을 잉태한 "맹씨행단"
충남 아산시 백방면 중리 설화산 아래에는 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맹사성 선생 생가가 있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맹씨행단(孟氏杏檀)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는 맹사성이 우의정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 이곳은 고려의 명장이었던 최영 장군이 지어 살던 집이었다. 맹 정승 할아버지는 최영 장군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여서 이 집을 이어받아 살게되었다. 후에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가 된다.
맹 정승 잉태에 따른 일화는 다음과 같다. 맹 정승 어머니가 시집을 왔는데 아버지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과거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꿈을 꾸었다. 태양이 자기 앞으로 떨어지는 것을 치마폭에 받는 꿈이었다. 하도 괴이한 꿈인지라 시아버지께 꿈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이르고, 사람을 사 급히 서울에 있는 아들 맹희도에게 편지를 보냈다. 과거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 편지를 받아보니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부랴부랴 하향한 아들이 아버지께 문안을 여쭈었다. 아버지는 태평하게 "내 병은 그 동안 다 나았으니 염려말고 며칠 쉬었다 가거라"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이 아버지 뜻대로 집안에 머무는 동안 며느리가 수태를 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이었다. 맹사성 할아버지는 좋은 태몽에 좋은 산천정기를 받아 아이를 가지라고 아들을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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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9 번째로 읽음
작성 일자 : 2004/11/06 21:12
수정 일자 : 2004/11/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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