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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43 번째 방문객 (오늘 41명)

전통상례 범절

喪禮凡節                    

 

                 

    1.신질(愼疾)

 

 신질 이란 병환(病患)을 삼가 공손히 받든다는 뜻이다. 어버이께서 병환이 나시면 효성을 다하여 이를 간호하다가 드디어 병세가 위중(危重)하면 장소를 정침(正寢)으로 옮긴다.

정침은 제사나 일을 하는 안채의 방을 말하는데 원래 정(正)이란 글자는 남향의 창문이 난 밝은 방의 뜻이 있으며 지금의 안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때 정갈한 의복으로 갈아 입혀 드리고 북쪽 창문 아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여 눕혀 드리고 자식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병풍으로 머리맡을 둘러드리고 가족은 방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는데 비파나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있다면 이걸 모두 치운다. 방 안팎을 청소함은 이 때 아직 돌아가신 것이 아니므로 마지막으로 병 문안을 오는 사람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환자를 평상시 잠자듯 동쪽으로 머리를 두게 함은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효자의 애틋한 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물론 평상시의 예도 그러하지만 어린이들이 환자의 머리맡을 지나는 것을 엄금해야 하며 가족은 오직 엄숙하고 슬픈 마음으로 조용하게 행동한다.

    2.유언(遺言)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빠지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조용히 하고 운명을 기다리는데 이 때 물어 볼일이 병자에게 있으면 병자가 대답하기 쉽게 간추려서 묻고 대답을 기록해야 한다.

또한 병자 자신이 자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교훈(敎訓) 혹은 재산 분배(財産分配)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유언이라 한다.

유언은 자필로 쓰는 것이나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에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데서 다른 사람이 대리(代理)로 쓸 수도 있다. 녹음기가 있으면 녹음을 하는 것도 생존시의 육성을 들을 수 있어 한층 의의가 있을 것이다.

    3.임종(臨終)   

 

임종은 부모가 운명(殞命)하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드리는 일이다. 임종은 예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집안에 병세가 위중한 노인이 계실 때에는 급할 때 기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거처를 주위의 사람이나 가족에게 알려두어 속히 연락 받을 수 있게 한다.

또한 환자가 있는 방은 물론이고 운명하신 후 모셔 둘 방에는 잔 세간을 치우고 정결하게 청소하고, 임종시에 갈아 입혀 드릴 옷 한 벌을 준비하여 둔다. 이 옷은 평소에 입던 옷으로 흰색이나 엷은 색의 옷이 좋을 것이다.

한편 가족들은 황망 중에도 깨끗하게 몸가짐, 옷차림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유의하여 두는 것이 옳다. 임종에는 다음과 같이 유의한다.

① 의사가 임종이 가까 왔음을 알려주면 미리 준비하였던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운명할 수 있도록 자손이나 측근에서 유의한다. 임종이 가까 왔음을 짐작할 때 서럽고 한스러운 마음에 잠겨 이성을 잃거나 또는 당황하면 오히려 운명하는 분을 바르게 살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② 임종을 모실 마음 준비를 갖추고 측근의 가족이 임종을 지켜드린다. 말씀을 남기려고 하는 듯하면 가까 이에서 들어드린다. 무엇인가 미진해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소원대로 해드리겠다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전달해 드려서 안심할 수 있게 하면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마음 편히 운명하실 수 있도록 함이 옳을 것이다.

운명할 분을 두고 침착하게 마음을 진정한다는 것은 실은 제삼자나 할 말이지 정작 자손이나 측근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황하고 서러운 나머지 오히려 실수가 있으면 두고두고 한이 남을 경우도 있어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운명은 참으로 엄숙한 순간임을 생각할 때 자손으로서의 마지막 효성으로 마음이 가다듬어질 것이다.

    4.정제수시(整齊收屍)

 

운명을 하면 임종을 모신 분들이 우선 조용히 명복을 빌어드린 다음 침착한 태도로 돌아가신 분의 몸과 수족을 반듯하게 정제 수시 하고 북침(北枕-머리를 북쪽에 두는 뜻)으로 눕히고 얼굴에 백 포를 씌우고 홑이불을 머리까지 덮어둔다.

정제수시는 먼저 눈을 곱게 감도록 쓸어 내리고 준비한 햇솜으로 입과 코와 귀를 막아 피가 쏟아지지 않도록 하며,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서 펴고 백 포(白布)로 얼굴을 덮고 백지나 베, 천으로 좌우 어깨를 단단히 동이고(綴), 두 팔과 두 손길을 곱게 펴서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되, 남자는 왼손을 위로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하여 놓고 두 다리를 곧게 펴놓고 두 발끝을 위로 가도록 똑바로 모아 가지고 백지나 베 천으로 동이며 어그러지지 않게 한다.

이 때 깨끗한 거어즈 나 탈지면에 알코올을 묻혀 얼굴, 손, 발을 우선 깨끗하게 하여 좋은 인상, 좋은 모습으로 남도록 한다. 종교를 믿는 가정에서는 정제 수시를 종교에 따를 것이나 재래의 전통적인 유교 절차나 혹은 각 가문의 고유한 가정의례에 따라서 시신을 정중하게 모셔야 한다

북침을 하는 것은 석가모니가 열반(涅槃)에 들어갔을 때 머리가 북쪽에 있었던 일에 연유한다고 한다. 정제 수시 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뵐 측근이 뵙고 나면 병풍으로 앞을 가린다. 이 때 병풍은 글씨만으로 된 것이 좋고 대개 뒷면의 흰색이 앞으로 보이게 펴서 친다.

사체를 모신 방에는 불을 때지 말고 차게 한다. 임종을 모시고 이상과 같이 임종 직후의 예를 갖춘 다음 애도, 조신 하는 마음으로 초종(初終)에 임한다. 운명한 후 장례 지낼 때까지를 초종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서둘러서 임종에 임하지 못한 자손, 측근에게 알려 가능하면 수시(收屍) 전에 당도하도록 한다. 또한 직장에 알려 기중(忌中) 결근을 요청하고 한편 직장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수습한다. 초종 중에 와서 도와 줄만한 친지와 운명한 분의 가까운 친지에게 알려 드린다. 기별을 받은 가까운 친지는 가능한대로 바로 달려와서 초종을 돕도록 한다.

    5.고복(皐復)

 

고복은 초혼(招魂)이라고 하며 사람이 죽으면 혼이 몸에서 떠난다 하여 그 혼백을 다시 불러 몸에 붙게 한다는 뜻의 절차로서 예문에서는 복(復)이라고 한다.

수시가 끝난 뒤에 시체를 대면 안 한 사람으로서 채반에 밥(白飯) 세 그릇(속칭 사자 밥), 짚신 세 켤레를 담아 대문 밖에다 놓고, 여상(女喪)에는 여자가, 남상(男喪)에는 남자가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던 옷, 즉 남자면 두루마기(周衣)나 속적삼을, 여자면 속적삼을 가지고 앞 처마로 해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의 안섶을 잡고 북향하여 옷을 휘두르며 크고 긴 목소리로 망인이 남자라면 그 주소, 직함, 성명을 여자라면 주소 및 본관과 성씨를 외친 뒤에 복·복·복하고 세 번 부른다.

옷은 지붕 위에 놓아두거나 갖다가 시체 위에 덮고 곡한다. 이제는 이런 절차는 생략되었으며 또 생략함이 좋을 것이다.

※고 복(皐復)할 때의 예 :

(1) 벼슬이 없을 때 男子-「海東 大韓民國 ○市 ○洞 處士(學生) 全州 李公 復·復·復」
                        女子-「海東 大韓民國 ○市 ○洞 孺人 光山 金氏 復·復·復」

(2) 벼슬이 있을 때 男子-「海東 大韓民國 ○市 ○洞 郡守 南陽 洪公 復·復·復」
                        女子-「海東 大韓民國 ○市 ○洞 郡守夫人 昌寧 曺氏 復·復·復」

6.발상과 상주(發喪과 喪主)

 

발상이란 상(喪)을 발표한다는 뜻이다. 집안에서는 먼저 상제(喪制-상을 당한 자손) 중에서 주상(主喪)을 정하고 역복(易服)을 한다. 주상 즉 상주는 죽은 사람의 장남이 되고 만일 장남이 죽고 없는 경우에는 장손이 아버지 대신으로 맏 상주가 되어 승중상(承重喪)으로 주상이 된다.

역복이란 옷을 갈아입는다는 뜻이며 이 때부터 상복을 입는 것은 아니고 우선 평소에 입던 화사한 색채의 옷을 벗고 검소한 것으로 우선 바꾸어 입는다. 옛날에는 주상인 남자는 심의(深衣)를 입고 여자는 백 장의를 입었다고 하며 최근까지도 주상인 남자는 흰색 두루마기를 한편 팔을 빼어 소매를 늘어뜨린 채 입었다.(부 상이면 왼편 팔을 빼고 모 상이면 오른편 팔을 빼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검은색 양복으로 갈아입어도 무방할 것이다.

옛날 발상 때는 아들, 딸, 며느리가 머리를 풀었다. 그러나 출계(出系=양자간 것)한 아들과 출가(出嫁)한 딸은 머리를 풀지 않으며 비녀만을 빼었다. 이렇게 주상을 정하고 역복을 하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여야 비로소 발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도회지에서는 상가(喪家)의 표시를 기중(忌中. 喪中. 喪家)이라고 써서 문밖에 붙이고 발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참고 : 장자나 장손의 상(喪)에는 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주상이 되고 중자(衆子)나 중손(衆孫)의 상(喪)에는 그의 아들이 주상이 된다.

    7.호상소(護喪所)

 

복인(服人)이 아닌 친족이나 친지 중에서 상례에 밝고 경험이 있는 사람을 가려 초종범절(初終凡節) 일체를 맡아서 지휘 감독케 하는 사람을 호상이라 하는데 장례식의 진행에 따라 여러 가지 실무의 일을 맡아 볼 몇 사람(문서를 책임질 사서<司書>· 일체의 재물을 책임질 사화<司貨>·상례<相禮>·집사자<執事者> 등)을 더 추가로 선정하여 호상을 보조케 한다.

이 때부터 호상은 지필묵(紙筆墨)과 백지로 엮은 공책 및 권을 준비하고 초종 중의 금전과 물품의 출납, 문상객(問喪客)의 출임과 부의금(賻儀金)의 수남을 일일이 정확히 기록하고 초종비용에 낭비가 없도록 잘 관리하며 조문객의 접객범절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문상객의 출임을 적는 책은 부상(父喪)이면 조객록(弔客錄)이라 하고 모상이면 조위록(弔慰錄), 처자상(妻子喪)이면 위문록(慰問錄) 또는 조문록(弔問錄)이라 하며 부의(賻儀)와 물품의 수납은 「부의록」에 기록한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이므로 상주가 나중에 이것을 보고 상대편의 상례 때에 사은(謝恩) 혹은 반례(返禮)하는 것이니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호상은 또 축문을 작성하고 장지의 선정을 상주와 의논하고, 각종 신고 같은 것도 맡아서 처리하는데 이 때 모든 절차를 처리하는데 편리하도록 상주와 연락하기 쉬운 장소에 호상소(護喪所)를 마련하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초종범절의 진행을 확인하고 절차에 차질이 없도록 책임성 있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8.전(奠)올림

 

은 초종 중 성복제 이전까지는 돌아가신 분이라도 생시와 같이 모신다는 뜻에서 포혜(포와 식혜)를 올리는 일이다. 전을 올릴 때에는 제상을 시신을 가린 병풍 앞에 놓고 백지를 깐 다음 그 위에다 올린다. 반드시 포혜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즐기던 음식(과일·포 등이 좋을 것이다.)을 올려놔도 무방하며, 하루에 한 번씩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좋다.

전으로 올리는 음식은 되도록 마른 음식이나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과일(과일의 아래위만을 도려내고 쓴다) 등으로 하는 것이 정결해 보인다. 여러 시간 놓아두는 것이므로 쉽게 변색하는 것, 냄새가 좋지 않은 것 등은 쓰지 않도록 한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꽃을 꽂아서 제상 양옆으로 놓아 드린다. 옛날 범절에는 없던 일이지만 음식만을 늘어놓느니 보다 오히려 정결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할 수 있을 것이며, 상중이라도 이 꽃은 시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꽃 중에서도 상중에는 화려한 색은 피하는 것이 좋고, 또한 제상에는 조촐한 모양으로 꽂아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을 올리는 일은 상제가 친히 올리지 않고 집사자가 대신 올리며 절을 하지 않는다. 가문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 전을 드릴 때 준비할 것으로는 밥상, 포, 과일이나 채소, 술, 식혜, 세숫대야, 수건 등이다.

    9.영정(影幀).향탁(香卓)

 

요즈음은 혼백 대신으로 영정을 모시는 일이 많고 영정은 고인의 사진을 말하며 향탁은 분향하는 상을 말한다.

○ 영정 … 미리 준비한 고인의 사진을 검은색의 틀에 끼우고 검은색의 리본을 드리워 시신을 가린 병풍 앞으로 모시는데 전을 올릴 제상 위에 모시거나 혹시 집안에 교의(交椅)가 있을 때에는 교의 위에 모신다.

○ 향탁 … 제상 앞으로 향탁을 놓고 백지를 깔고 그 위에 향로, 향합, 촛대를 준비하여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힌다. 초종 중에는 보통 선향을 쓴다.

향탁의 앞으로 돗자리를 깔고 분향할 자리를 준비한다. 이 방을 지키면서 향불이 그치지 않고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상제들은 향탁 옆에 서 있는다. 상제들은 조상객의 조상을 받으면서 유해를 지켜 모시고 초종 중을 지내는 것이다.

    10.관(棺)과 칠성판의 준비

 

(棺)과 칠성판을 만드는 것은 호상이 목수에게 명하여 나무를 골라다가 만든다. 나무 중에는 유삼(油杉)이 제일이며 잣나무가 그 다음이다. 관재(棺材)는 천판(天板) 하나, 지판(地板) 하나, 사방판(四旁板)을 각각 하나씩으로 한다.

두께는 세 치나 혹은 두 치 반으로 하고 높이나 길이는 시신(屍身)의 길이와 부피에 알맞도록 하여야 한다. 칠성판은 염습(殮襲)할 때에 시신의 밑에 까는 것이다.

옛날에는 부모의 회갑(回甲)이 지나면 미리 관재를 준비하여 옻칠을 하여 소중히 두었다가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976 번째로 읽음
작성 일자 : 2006/10/07 23:36
수정 일자 : 2006/10/07 2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