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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43 번째 방문객 (오늘 41명)

전통상례 범절 3

21.조문(弔問  .弔喪)

 

조객(弔客)이 조복(弔服=白衣·白帶)을 입고 전헌(奠獻)할 술과 과일 등의 조물(弔物)과 제문(祭文)을 가지고 와서 온 뜻을 전하면 상주 이하 모두 곡하고 호상이 나와서 조객을 맞는다.

조객은 영좌 앞에 나아가 곡하고 재배(再拜)한 뒤 제물을 진설하고 분향하고 잔을 올리며 제문을 읽는다. 그리고 난 다음 또 곡하면서 재배한다. 예를 마치고 나면 조객과 상제가 서로 마주 보고 곡하고 객이 먼저 절하면 상제가 답배한다.

다음 객이 상사(喪事)의 놀라움을 말하면 상주는 자기의 죄를 말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이어 객이 상제를 위로하고 물러가면 상주는 다시 곡하며 객을 보낸다. 그러나 이것도 약식화되어 조객이 먼저 호상에게 성명을 통하고 들어가면 상주는 일어나 곡한다. 조객은 영좌를 향하여 곡하고 두 번 절한 뒤 다시 상주에게 절하고 인사를 한다. 조객이 어른인 경우에는 상주가 먼저 절한다.

그리고 상(喪)에는 반드시 남주(男主)가 있어 남자 조문객을 대하고 또 여주(女主)가 있어 여자 조문객을 맞는다. 남주는 적자(嫡子), 여주는 적부(嫡婦)를 말한다. 또 조상(弔喪)은 원칙적으로 성복 후에 하도록 되어 있다.

성복 전에는 가까운 친척이나 특별히 상사로부터 또는 나라에서 사자(使者)가 왔을 경우에 조문을 받는다. 성복 후라도 돌아가신 분과 생시에 면식(面識)이 없거나 여자인 경우에는 빈소(殯所)에 들어가 절하지 않고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또 내간상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이 아니면 빈소에는 들어가지 않고 역시 상주에게만 인사한다. 그러나 내간상이 조모나 어머니로서 고령인 때에는 이 내외법을 참작하지 않아도 된다.

⑴ 곡(哭)하는 요령

상주는 「애고 애고(哀告 哀告…」하며 몹시 애통하게 통곡을 하고 조객들은 「허희 허희(噓희 噓희 )」하면서 슬피하는데 보통 「어이 어이…」로 소리내어 곡한다.

⑵ 인사하는 요령

조객이 성명을 통하고 나면 상주 이하가 자리에 나가 영좌 동남쪽에 서서 모두 곡을 하면서 기다린다. 호상이 나가 맞으면 조객은 들어와서 상주에게 읍하고 말하기를 「상사란 웬말이요」 또는 「얼마나 망극하오」「얼마나 상심되십니까」라고 인사한다.

    22.영결식 (永訣式)

 

⑴ 치장(治葬)

사람이 죽어서 최후의 영결을 하기 전 먼저 장사 지낼만한 땅을 찾아 다듬어야 한다. 먼저 호상은 미리 상주와 의논하여 장지 즉 묘지를 선정해야 한다. 택조(宅兆)는 묘지를 일컫는 말인데 흔히들 택조를 가린다고 하여 풍수설을 뒷받침한 좋은 묘지를 찾아 장지(葬地)로 결정한다.

묘지 자리가 정해지면 장사(葬事) 지낼 날짜를 정하고 이 날짜를 미리 친척이나, 친지 또는 사돈 등 알릴 곳에는 바로 알린다. 이 때 날짜가 정해졌으면 조전(朝奠)때에 영연(靈筵)에 고(告)한다. 묘지가 결정되었으면 천광(穿壙)과 회격(灰隔)을 해야 하는데, 상주가 조곡(朝哭)을 한 다음 집사자를 거느리고 산지(山地)에 가서 산소지경(山所地鏡)을 마련한 다음 남문(南門)으로 되게 표목을 세운다. 표목은 두 개를 세운다.

이 때 향배(向背)는 묻지 않고 다만 앞을 남이라고만 하고 그런 다음에는 뒤와 중앙에도 표목을 세운다. 이렇게 산소지경을 마련하였으면 토신제(土神祭)를 올려야 한다. 토신제는 산신제(山神祭)라고도 하며 상가의 먼 친척이나 손님 중에서 한 사람을 정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는데 가운데 표목 왼편에 남쪽을 향하여 제상을 마련하고 술, 과일, 포, 혜(酒, 果, 脯, 醯)를 차려 놓는다.

제주(祭主)는 길복(吉服)을 하고 제상이 있는 위(位) 앞에 꿇어 앉아 강신(降神)을 한다. 이 강신은 술을 잔에 부어 땅에다 뿌리는 것이다. 강신을 한 다음 두 번 절하고 또 꿇어 앉아 술잔에 술을 부어 제상의 위 앞에 올리고 정저(正箸)를 한 다음 독축한다. 이 때의 술잔은 단잔이다. 축문(祝文)은 토지축(土地祝), 산신축(山神祝) 또는 참파토축(斬破土祝), 개토축(開土祝)이라고도 하며 이 독촉이 끝나면 하저(下箸)하고 또 두 번 절한다.

산신제가 끝났으면 땅을 파서 광중(壙中)을 만들고 회(灰)를 다진다. 광중을 만들 때는 내외(內外) 합장일 때는 남좌여우(男左女右)가 되도록 한다.

※참고 : 이 때 즉 토신제에는 분향을 한다고 하기도 하고 일설에는 분향이 없다고도 하는데 가문에 따라서 전해 내려오는 풍습대로 행하는 것이 옳을 줄 안다. 분향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치는 후토(後土) 즉 토지신은 땅의 신이기 때문에 음(陰)에 속하고 불은 양(陽)에 속하는데 분향을 하면 바로 양이 생기므로 음인 토지신과는 상극이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산신제에는 절대로 분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⑵ 지석(誌石)

지석(誌石)은 두 개의 돌을 갈아서 한 개는 밑돌(誌底)로 해야 하며 또 한 개는 덮는 돌(誌蓋)로 해야 하는데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장사 지내는 날 광중(壙中) 앞 가까운 곳에 묻는다. 지석은 근래에 와서는 오지그릇을 불에 구어서 쓰는데 이것은 정결해서 매우 좋고 거기에 글자를 새기면 더욱 좋다. 지석을 봉분할 때 묻는 것은 후손에게 선대의 묘에 대한 후환을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⑶ 천구(遷柩)

발인(發靷) 전날 조전(朝奠)때 천구(遷柩)할 것을 고하는 천구취청사축(遷柩就廳事祝)을 읽는다. 그리고 영구를 받들고 사당에 가서 뵙고, 마루로 옮기고 나서 대곡(大哭)을 시킨다. 이 때 5복을 입을 친척들은 모두 모여서 저마다 자기가 입을 상복을 입고 제자리에 나아가 모두 곡을 한다.

조전을 올릴 때는 축관이 술을 따르고 북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사(告辭)를 읽고 일어나면 상주 이하가 슬피 곡하며 재배(再拜)한다. 영구(靈柩)를 옮기려 할 때는 부인들은 피하고 상주 이하 모두가 서서 지켜본다.

축관이 혼백을 받들고 앞서 가서 사당 앞에 가 뵈오면 집사는 제물을 가져다가 진설한다. 다음으로 명정이 따르고 일군들이 영구를 들어 모신다. 이때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 이 때 혼백으로 영구를 대신해도 된다. 그런 경우에는 제물이 앞에 가고, 명정이 그 다음에 가고, 혼백이 그 뒤를 따른다.

사당 앞에 이르면 북쪽을 향하여 혼백을 자리 위에 놓는다. 다시 영구를 마루로 옮길 때는 집사가 마루에 포장을 친다. 왼쪽으로 돌아서 영구를 자리 위에 모실 때 머리를 남쪽으로 두게 한다. 축관은 영좌를 마련하고 영구 앞에 제물 올릴 상을 준비한다. 그렇게 한 뒤에 상주 이하 모두가 제자리에 가서 앉아 곡한다.

그리고 해가 진 뒤에 조전(祖奠)을 올린다. 즉 조전(祖奠)을 발인(發靷) 전날 저녁에 지내야 하는 의식으로 조전(朝奠)처럼 지낸다. 저녁 상식을 지낸 후에 이 제사를 지내는데, 저녁 상식과 함께 겸해서 지내기도 한다. 제상을 마련하고 상주가 분향 재배한 다음 축관이 조전축(祖奠祝)을 읽고 제자리에 돌아오면 조전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제히 곡을 하고 재배한다.

    23.발인(發靷)

 

발인날 새벽에 사당을 하직하는 절차로 조조축(朝祖祝)을 읽는다. 명정이 먼저 가고 혼백이 그 뒤를 그리고 상주 이하가 곡하며 사당 앞에 나아간다. 그런 다음 깨끗한 자리나 상(床)을 마련하고 혼백을 모시고 상주 이하 복(服)순서 대로 들어가서 곡한다.

그리고 다시 명정과 혼백을 모시고 물러나온다. 예(禮)에 의하면 이 때 배례에 관한 이야기는 없으나 배례 후 물러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례를 집행하는 집사자는 조선제가 끝나면 제상을 치운다. 그런 다음 축관이 청구취여축(遷柩就轝祝)을 읽는데 이 의식은 망인의 시신을 상여(喪轝)에 싣는 절차이다.

청구취여축을 읽은 다음에는 영좌를 옮기며 집사자는 혼백(魂魄)을 받들어 나가야 하고 망인의 친척들이나 상례객들이 의자나 탁자, 향합 같은 것을 들고 나가면 부인들은 장막 안에서 곡한다.

이 때 상두꾼들이 관을 옮기어 상여에 싣는다. 이 때 상주는 곡하며 관이 제대로 실려지는가를 살펴 보아야 하며 집사자는 영좌를 관 앞으로 옮긴 다음 혼백을 영좌에다 모신다. 그리고 견전례(遣奠禮)를 드리며 견전례가 끝나면 상여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발인할 때 옛날에는 대여(大輿)를 썼지만 이것은 가난한 사람으로는 어려운 일이므로 풍속에 따라 상여(喪輿)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근래에는 영구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여 맨 앞에는 방상(方相)을 세우고 명정이 그 다음이며, 영거(靈車)가 있고 그 다음에 상여의 순서로 한다.상여 앞에는 공포(功布)가 서고, 곁에는 불삽(불삽) 또는 운삽(雲삽)을 세운다. 방상(方相)이란 초상 때 묘지에서 창을 가지고 사방 모퉁이를 지키는 사람이다. 방상(防喪)이라고도 한다. 공포(功布)는 영구 위에 있는 먼지를 터는 데 쓰는 것이다. 흰 무명 석자로 만들고 명정처럼 대나무에 매단다. 만장(輓章)이 있으면 같이 세운다. (삽)이란 원래는 털깃으로 만들었으나 후세에 와서는 네모진 화포(畵布)에 길이 다섯 자의 자루가 있고 긴 털을 장식한다. 대부(大夫)는 불삽을 쓰고 사(士)는 운삽을 쓴다. 신주(神主)는 밤나무로 만들고 궤는 검은 옻칠을 한다.

    24.견전(遣奠)

 

견전이란 영구가 떠날 때에 지내는 제사이다. 영구를 상여에 옮기고 혼백을 영좌에 모셨으면 제상에 제수를 차려 놓아야 하는데, 이 때 제수는 조전(朝奠)때와 같고, 축관이 향을 피우고, 술을 따라 올리고 무릎을 꿇고 고사(告辭)를 읽고 나면 상주 이하는 모두 곡하고 두 번 절한다. 술은 단잔이다. 제사가 끝나면 포를 거두어 상여에 넣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예법에는 없으나 효심에서 나온 것 같다.

견전례는 근래의 영결식과 같은 의식이다. 다음으로 축관이 혼백을 모시고 따로 신주를 받들어 혼백 뒤에 놓는다. 이 때 주인 이하 모든 사람들은 슬프게 곡을 한다. 영구가 떠나면 방상(方相)이 앞에서 길을 인도해서 간다. 명정, 공포, 만장, 요여, 요여배행, 영구, 영구시종, 상인, 복인, 조객의 순서로 출발한다. 요여배행은 복인이 아닌 친척이 배행하는 것이 보통인데, 복인이 배행하는 경우에는 건과 행전을 벗고 따르는 것이 원칙이며 영구의 시중은 조카나 사위들이 하는 것이 예법으로 되어 있다.

    25.운구(運柩)

 

영구(靈柩)가 가야할 묘지가 멀거나 상주 등이 병으로 걸어 갈 수 없으면 화려하지 않은 수레나 못난 말이나 혹은 나귀를 타고 가기도 하는데 묘지 앞 3백보(步) 쯤에서 내린다.

또한 상여로 운구할 때 묘지까지 이르는 도중 이른바 거릿제라고 하여 노제(路祭)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는 고인과 친한 조객(弔客)이나 친척 중에서 뜻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조전자(弔奠者)가 되어 제물(祭物)을 준비하였다가 지내는 것이다.

운구 도중 적당한 장소에 장막 혹은 병풍 등으로 제청(祭廳)을 마련하여 영여(靈轝)를 모시고 그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상주 이하 여러 복인들이 늘어서면 조전자(弔奠者)가 분향하여 술잔을 올리고 꿇어 앉아서 제문(祭文)을 읽고 배곡(拜哭)한다. 이 때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재배하며 곡한다.

또 묘지가 멀 경우에는 쉴 때마다 영좌를 영구 앞에 설치하고 곡하며 전을 드려야하며 밥을 먹을 때마다 상식을 올려야 한다. 밤이면 주인 형제 즉 상주와 친척들은 영구 주위에서 횃불을 붙쳐들고 영구를 호위 해야한다.

집사자는 영구가 묘소에 도착하기 전에 장지(葬地)에 먼저 영악(靈幄)을 마련하고 이미 도착한 손님들을 머물게 한다. 영구도 묘지에 도착하면 집사자는 급묘(及墓)를 설치하는데 영악(靈幄)이나 혹은 차일(遮日) 안에 병풍을 둘러친 다음 영구를 안치한다.

혼백은 영좌상에 모셔야하며 영구의 외결관(外結棺)을 풀고 괴임을 놓고 공포로는 관을 닦는다. 또한 구의(柩衣)로 관을 덮는다. 그런 다음 집사자는 명정을 막대에서 풀어서 관 위에 덮어놓고 영좌 앞에다가 술과 과일과 포를 진설한 후 상주는 곡을 해야 하는데 이 때 조객이 있으면 상주는 조문을 받는다.

26.하관(下棺)과 성분(成墳)

 

천광(穿壙)과 회격(灰隔)이 끝나면 바로 하관을 해야 하는데 하관하기 전에 상주 이하 복인들은 한차례 곡을 한다. 곡이 끝나면 시간과 좌향(坐向)을 잘 맞추어 하관을 하는데 상주 형제들은 하관이 제대로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관이 기울어지거나 움직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며 바르게 하관이 되었으면 설면자(雪綿子) 혹을 공포로 관을 깨끗하게 쓸고 구의(柩衣)와 명정을 정돈해서 관 한복판에 덮는다. 이때 삽(삽)은 광중 양쪽에 기대어 둔다.

그리고 현훈(玄훈)을 집사가 가져다가 상주에게 주면 상주는 이것을 받아서 축관에게 준다. 축관은 이것을 받들고 광중(壙中)에 들어가 관의 동쪽 즉 죽은 사람의 왼편에 바친다. 또는 현(玄)은 동편 위에 훈(훈)은 서편 아래에 바친다.

이어 상주가 두 번 절하고 이마를 조아리고 나면 모든 사람은 슬피 곡하며 배례한다. 현훈이란 패백으로 산신에게 드리는 것이라 하며 파란(혹은 검은) 빛과 붉은 빛의 비단인데 이것을 색실로 동심결로 묶은 것이다.

상주 이하 모든 사람의 호곡(號哭) 재배가 끝나면 석회를 처음 넣을 때 관 위에 횡판(橫板)을 대서 회가 관에 바로 닿지 않게 하고 백회로 관 위를 채우고 이 때 지석(誌石)대 위에 글씨를 쓰는 수도 있다.

그리고 상주는 두루마기나 옷자락에 깨끗한 흙을 담아 관의 상하 좌우로 「취토! 취토! 취토!」라고 세 번 외치면서 먼저 흙을 넣는다. 흙을 채울 때는 한 자 쯤 채우고서 다진다. 다음에 지석(誌石)을 묻고 성분(成墳)을 한다.

이 때 즉 하관 후 성분이 될 무렵 묘(墓) 좌편에 설전(設奠)하여 평토후사토지지신축 (平土後祀土地之神祝 或은 山神祝)을 읽고 산신제를 지낸다. 평토(平土)를 한 뒤에는 금정기(金井機) 안에 숯가루나 혹은 석회를 조금 뿌려 둔다. 이것은 다음에 혹 분묘를 고치거나 합장할 경우에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부처(夫妻)룰 함께 합장할 때는 남자는 왼편에 여자는 오른편에 모셔야 한다. 계실(繼室)은 따로 조역(兆域)을 하는 게 원칙이며 고위(考位)와 비위(비位)의 관의 길이가 같지 않을 때는 그 머리를 맞추어 안장한다.

또 성분을 해 나갈 때 분묘 복판에 푯말을 세우고 노끈을 매어, 그 한 쪽 끝을 가지고 분묘 주위를 돌아 직경이 16척이나 17척, 합장일 때는 20여척이 되도록 성분터를 잡는다.

따로 비석을 세울 경우 부인은 남편의 장례를 기다려서 세운다. 석인(石人), 석상(石牀), 망주석(望柱石)을 분묘 앞에 세우기도 하고 또 석장 북쪽에 혼유석(魂遊石)을 세우고 향안석(香案石)을 석상 남쪽에 세우기도 한다

비석(碑石)은 좋은 돌을 골라서 하되 길이는 석자 정도로 하고 너비는 한 자 정도로 한다. 두께는 너비의 3분의 2쯤이 적당하다. 비석 밑에는 받침을 만드는데 그 높이는 비석 높이와 균형을 맞추어 할 것이다. 비석에 쓰는 글은 지석(誌石)에 쓰는 글과 같으나 다만 합장일 때는 다른 줄에 「某封某氏부左)라고 쓴다.

    27.반곡(返哭)

 

반곡(返哭)이란 상주 이하가 영거(靈車)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곡하는 것을 말한다.

집에 이르러 문이 바라보이면 모두 더욱 슬프게 곡을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사가 먼저 영좌를 만들어 놓고 집에 도착해서 축관이 신주를 모셔다가 그 자리에 놓고 혼백은 그 뒤에 놓는다.

이 때 상주 이하가 영좌 앞에 슬피 곡을 한다. 이 때 조상(弔喪) 온 사람이 있으면 조문(弔問)을 받는다. 기년(朞年)이나 9월 복에 해당하는 사람은 술과 고기를 먹고 다만 잔치만 열지 않는다. 이 때 대공(大功) 이하의 복인으로서 다른 집에 사는 사람은 집을 돌아가도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조상하는 자가 있더라도 조례(弔禮)를 길에서 행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온 뒤 행하는 것이 예절에 알맞다.

    28.우제(虞祭)

 

우제는 장사 지낸 날이 초우(初虞)가 되고 재우(再虞)는 초우 뒤의 유일(柔日) 아침에, 삼우(三虞)는 재우를 지내고 난 다음의 강일(剛日)을 골라 아침에 지낸다.

유일은 십간(十干)의 乙, 丁, 己, 辛, 癸의 날을 말하고 강일은 십간(十干) 중의 甲, 丙, 戊, 庚, 壬의 날을 말한다. 따라서 재우는 이틀만이나 삼일만에 삼우는 삼일만이나 사일만에 지내게 된다.

⑴ 초우(初虞)

초우의 경우 혹시 묘소가 멀더라도 이 날을 넘기지 말 것이며 만일 집이 멀어서 당일로 집에 돌아갈 수 없다면 중간에 자는 집에서라도 지내야 한다. 이날 상주 이하 모두 목욕을 하지만 빗질은 하지 않는다. 만일 해가 저물거나 목욕할 시간이 없으면 간단하게라도 몸을 씻는 것이 좋다. 초우에서부터가 정식 제사(祭祀)의 의식이 되며 가문에 따라 제례(祭禮)의 절차와 제물의 준비 및 진설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⑵ 재우(再虞)와 삼우(三虞)

재우와 삼우 제절차는 초우(初虞)와 같이 행하되 축문은 「초우」를 「재우」 또는 「삼우」라 고치고 협사(협事)를 재우는 우사(虞事), 삼우는 성사(成事), 소상에는 상사(常事), 대상에는 상사(祥事)라고 고쳐 쓴다.

⑶ 상식(上食)과 삭망(朔望)

초우를 마치면 조석의 전(奠)은 올리지 않고 조석으로 상식만 올리고 곡한다. 상식은 보통 식사처럼 올리는 것이다. 즉 메·탕(갱)·찬(반찬)·다(숭늉)를 올린다. 제상에 식상을 올리고 밥 뚜껑을 열어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수저 그릇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곡을 한 뒤 탕(갱)을 거두고 숭늉을 올리고 숟가락으로 밥을 세 번 숭늉에 말고 조금 있다가 수저를 전대로 놓고서 재배 후 철상한다. 그러나 잔대와 잔은 늘 젯상에 놔둔다.

초하루와 보름은 삭망(朔望)이라고 하는데 삭망 아침에는 전을 올린다. 이웃에서 음식이 들어오거나 햇곡식과 과일 등이 나오면 먼저 제연에 올리고 애통해한다.

⑷ 졸곡(卒哭)

삼우(三虞)를 마친후 석달만에 강일을 택해서 졸곡을 지낸다. 고례(古禮)에 의하면 대부(大夫)만이 석달 만에 장사를 지내고 사(士)는 한 달을 넘어서 지낸다. 가령 그믐에 사람이 죽었는데 다음날 열흘 전에 장사를 지낸다면 이것은 말만이 한달이지 사실은 한 달이 아닌 것이니 반드시 30일이 지나서 장사를 지낼 것이며, 그 뒤 석달만에 졸곡을 지낼 것이다.

졸곡을 지낼 하루 전에 제기와 제물을 준비하고 동이 틀 때 일찍 일어나서 채소와 실과, 술, 반찬을 진설한다. 축관이 출두하면 상주 이하가 모두 들어가 곡하고 강신(降神)한다. 상주와 주부가 반찬을 올리고 초헌, 아헌, 종헌을 마치고 유식, 합문, 계문, 사신을 행한다.

이로부터 조석에 슬픈 마음이 나도 곡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주 형제들은 채소와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그러나 실과는 먹지 않는다. 제사지내는 의식은 모두 우제(虞祭) 때와 같다.

⑸ 부제(부祭)

부제는 신주를 그 조상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로서 유일(柔日), 강일(剛日)을 가릴 것 없이 졸곡을 지낸 다음날 지낸다. 즉 부제(부祭)는 망위(亡位)를 그의 조고(祖考) 위(位) 곁에 모시는 의식이다. 이 제사도 졸곡과 같이 차리지만 다만 사당에서 지내는 것만이 다르다. 사당이 비좁으면 마루에서 지내는 수도 있다. 그리고 신주(神主)가 없으면 지방(紙榜)으로 신주를 대신한다. 지방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강신을 먼저하고 참신을 한다.

부제를 지낼 때 조고(祖考)나 조비(祖비)의 자리는 한가운데에 마련하여 남쪽을 향하게 하고 망인(亡人)의 자리는 그 동남쪽에 마련하여서 서쪽을 향하게 한다. 모상(母喪)에는 조고(祖考)의 자리는 마련하지 않는다. 모든 음식 준비는 졸곡 때와 같이 하여 이것을 셋으로 나누어 놓고 어머니 초상에는 둘로 나눈다.

목욕하고 머리에 빗질하고 동이 트면 일찍 일어나서 상주 이하가 영좌 앞에서 곡한다. 먼저 조고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영좌에 놓고 여집사가 조비의 신주를 받들어 내다가 그 동쪽에 놓는다. 만일 어머니 초상일 때는 조비의 신주만 모셔 나온다.

    29.문상인삿말, 조장(弔狀)과 조전(弔電), 조위금 봉투·단자,

 

문상 인사말을 주제 열린 이번 자문회의는 먼저 '문상(問喪)'과 관련된 여러 말들의 쓰임에 대해 논의했다.

상가에 가서 죽은 이에게 예를 올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을 보통 '문상(問喪)'이라 하고 '조문(弔問)', '조상(弔喪)'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말들을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이들이 서로 다르게 쓰이던 말이었다고 하는 것이 한 자문위원의 지적이다.

'조상(弔喪)'은 '죽은 이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고, '조문(弔問)'은 상주에게 인사하는 것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상(弔喪)'이나 '조문(弔問)'은 부모상 또는 승중 상(承重喪) (손자가 상주가 된 경우), 남편 상에만 쓸 수 있는 말이었다. 아내 상, 형제 상, 자녀 상, 그리고 승중 상(承重喪)이 아닌 조부모 상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하는 것은 '조위(弔慰)'또는 위문 또는 '위문(慰問)'으로 달리 지칭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들을 특별히 구분하여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모든 경우를 '문상(問喪)'이라는 말로 대신해 쓸 수 있다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문상(問喪)인사말 >

    
많은 사람들이 문상을 가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 망설인다. 실제 문상의 말은 문상객과 상주의 나이, 평소의 친소 관계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자문위원들은 문상을 가서 고인에게 재배하고, 상주에게 절한 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한 예의에 맞다고 하였다. 상을 당한 사람을 가장 극진히 위로해야 할 자리이지만, 그 어떤 말도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더욱 더 깊은 조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굳이 말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또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가 좋다.

전통적으로 아버지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대고(大故)말씀 무어라 여쭈오리까?', 어머니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상사 말씀 무어라 여쭈오리까?' 라고 부모를 구분해서 말했었다는 자문위원도 있었다. 또 과거에는 남편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천붕지통(天崩之痛)이 오죽하시겠습니까?'하고, 아내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고분지통(叩盆之痛)이……'한다든가, 형제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할반지통(割半之痛)이……'하기도 하였다.

자녀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참척(慘慽)을 당하시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하기도 했으나, 굳이 복잡하게 여러 경우로 나누어 따로따로 인사말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결론이었다.

다만 부모 상의 경우에만 '얼마나 망극(罔極)하십니까?'를 쓸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말을 젊은 상주에게 하거나 또 젊은 문상객이 하는 것은 어색할 것이다. 실례로 한 자문위원은 전에 어떤 선생님이 모친 상을 당하였는데 제자가 선생님께 문상 가기 전에 미리 어떤 책에서 찾아 보고 또박 또박 '망극지통(罔極之痛)……'하자, 오히려 그 선생님께서 몹시 당황해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또 50대 후반의 한 자문위원은 부친 상을 당한 친구에게 '얼마나 망극하십니까?'라고 했더니 상주가 놀라는 표정이었다고 했다. 이미 이 말은 50대 후반의 사람에게도 어색한 말이 되었다 하겠다. 따라서 특히 나이가 많은 분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번 자문회의에서는 어떤 경우의 문상에서나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굳이 말을 한다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또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를 쓸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자문위원들은 말을 할 경우라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뒤를 흐리는 것이 예의라고 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문상하는 사람도 슬퍼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문상 인사말은 상황이나 문상객과 상주의 관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자문회의에서 그러한 특수한 상황까지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상을 가서'호상(好喪)입니다.'라는 말은 혹 문상객끼리면 몰라도, 상주에게는 써서는 안될 말이다.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 천수(天壽)를 다했더라도 잘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은 상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문상을 하는 사람이 말로써 문상하지 않은 것이 가장 모범이듯이, 문상을 받는 상주 역시 문상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주는 죄인이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굳이 말을 한다면 '고맙습니다.' 또는 '드릴(올릴)말씀이 없습니다.'하여 문상을 와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된다. '망극하옵니다.' 라든지 '시탕(侍湯)한 번 제대로 못 하여 드린 것이 그저 죄스럽습니다.'하는 등 요즘 잘 쓰지도 않는 말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것은 상주로서의 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만약 말을 할 경우는 다음 표와 같다.

상    황

문상객의 말

상주의 말

일반적인 경우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모상의 경우

얼마나 망극(罔極)하십니까?


부고는 '○○公 以老患 於自宅 別世 玆以 告訃' 와 같이 한문으로 써 왔다. 그러나 어려운 한문투로 쓰는 것보다는 국한문 혼용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견해였다.

또 부고를 자식의 이름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예(禮)가 아니므로 꼭 호상(護喪)의 이름으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의 ○○'라고 쓰는 자리에 '부친'이라고 쓰기도 하지만 상주의 아버지이면 '대인(大人)', 어머니이면' 대부인(大夫人)', 할아버지이면 '왕대인(王大人)', 할머니이면 '왕대부인(王大夫人)', 처는 '내실(內室)' 또는 '합부인(閤夫人)', 형이면 '백씨(伯氏)' 또는 '중씨(仲氏)' , 동생이면 '계씨(季氏)'라고 쓴다.

또 나이가 많은 분이 돌아가신 경우에는 '노환(老患)' 이라고 쓰지만 경우에 따라 '숙환(宿患)', '병환(病患)', '사고(事故)'등으로 쓴다.

 



<조장(弔狀)과 조전(조電)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상을 갈 수 없을 때에는 편지나 전보를 보낸다. 이전에는 부고(訃告)를 냈는데도 문상을 오지 않았거나 적어도 편지나 전보조차 보내 오지 않은 사람은 후에 만나도 대면을 하지 않았다 한다.

요즘은 조장보다는 전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엽서로 조장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조장은 굳이 어려운 한문으로 쓸 것이 아니라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이 좋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 다음에 '근조(謹弔)'라고 쓰기도 하나 '근조(謹弔)'라는 말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를 뜻하는데 앞에 이 말이 있으므로 굳이 다시 쓰지 않고 '재배(再拜)'라고 쓴다.

우체국에 가면 정형화된 조전(弔電)문구가 마련되어 있는데 '춘부장의 서거를 애도하오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와 같은 전보문구는 어법에 맞지 않으므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견해였다.

 


조위금 봉투에는 초상의 경우 '賻儀(부의)'가 가장 일반적이며 '謹弔(근조)'라고 쓰기도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처럼 한글로 쓰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단자에는 모르되 봉투에 문장으로 쓰는 것이 어색하므로 쓰지 않는 것으로 정하였다.

소상(小祥)이나 대상(大祥)의 경우에도 부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봉투에 '전의(奠儀)'또는 '향촉대(香燭代)'라고 쓰면 된다. 단자는 부조하는 품목을 적은 것을 가리킨다.

요즘은 이 단자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단자를 쓰지 않고 봉투만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자문위원들의 지적이었다. 단자는 흰 종이에 쓰는데 단자를 접을 때 가능하면 조의 문구나 이름이 접히지 않도록 한다.

부조하는 품목이 돈일 경우에는 단자에 '금○○원'이라 쓴다. 영수증을 쓰듯이 '일금○○원 정'으로 쓰지 않도록 한다. 부조를 돈이 아니라 광목으로 할 때는 '금○○원'대신에 '광목 ○필', 종이라면 '백지 ○○권'하는 식으로 쓴다. 부조하는 사람의 이름 뒤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쓴다면 '근정(謹呈)'이라고 쓴다.

'○○댁(宅) 호상소 입납(護喪所 入納)' 이니 '○○선생 댁 호상소 귀중'과 같은 것을 쓰기도 하는데 요즘은 호상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런 말은 쓰지 않아도 된다.   

 

    30.방위 간지(方位 干支)

 

   

   ◇ 나침판으로 산소 좌향 보는법

      ㅇ 묘소의 방향이 자좌(子坐)로 되어 있으면 고인의 머리쪽이 정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묘지의 방향은 정남향이 됩니다.
      ㅇ山所 龍尾(무덤의 분상뒤를 꼬리같이 만드는것)에 다 羅針盤을 놓고 우선 羅針을 南北
          으로 정확하게 맞인다음 羅針盤 중앙을 上下로 連結하는 線을 기준하여 上(용미쪽)을
          坐라하고 下(제절쪽)을 向이라 한다

     ※ 例) 正北에서 正南은 子坐 午向이고
            正東에서 正西는 卯坐酉向이다

1564 번째로 읽음
작성 일자 : 2006/10/07 23:42
수정 일자 : 2006/10/07 2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