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고대의 산스크리트 대서사시로서, '바라타족(族)의 전쟁을 읊은 대사시(大史詩)’란 뜻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구전(口傳)되어 오는 사이에 정리 ·수정 ·증보를 거쳐 4세기경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18편 10만송(頌)의 시구(詩句)와 부록 《하리바니사 Harivanisa》 1편 10만 6000송으로 구성되었다.
바라타족에 속한 쿠르족과 반두족의 불화로 18일간의 큰 싸움이 벌어져 반두족이 승리하는 전말이 주제이며, 본제(本題)는 전편의 약 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그 사이에 신화 ·전설 ·종교 ·철학 ·도덕 ·법제 ·사회제도 등에 관한 삽화(揷話)가 많이 들어 있다.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은 아름다운 연애와 기구한 운명을 다룬 <날라왕(王) 이야기>, 정숙한 아내를 그린 <사비트리 이야기> 등으로 이 삽화들은 후세의 사상 ·문학에 자료를 많이 제공하여, 인도 국민의 정신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도문화가 보급됨에 따라 동남아시아의 인형극 ·그림자 연극에도 자주 채택되었다.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하스티나푸루에 자리잡은 쿠루족의 왕인 비치트라비야가 죽자 장남인 드르타라스트라가 왕이 되어야만 했지만 그가 장님이라 관례에 따라 이복 동생인 판두가 왕이 된다. 그러나 판두는 사슴으로 변신해 뛰어 놀고 있던 성자 부부를 활로 쏘게 되어 저주를 받게 된다. 저주 내용은 여인과 침실로 들어가는 순간 죽게된다는 것이었다. 낙담한 판두는 왕국을 포기하고 임시로 형에게 왕권을 주고 히말라야로 들어가 수행을 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의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여인과 침실로 들어가자니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판다는 주문의 힘으로 그 저주를 이겨내고 무려 다섯 아들들을 갖게 된다. 유디스트라, 비마, 아르쥬나, 니콜라, 사하데바라는 다섯 아들이었는데 그가 죽고 나면 장남인 유디스트라가 왕이 되게끔 되어 있었다. (형에게 임시로 준 왕권이었기에)
그러나 판두가 죽은 후 드르타라스트라의 아들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선 그들은 첫째 아들 두료다나의 주도 아래 판두의 오형제들을 해치려고 한다. 죽음을 모면한 오형제는 그 나라를 떠나 여러 왕국을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 드라우파디란 아내를 둘째 아들인 아르주나가 얻게 되는데 다섯 형제의 공동의 아내로 하기로 한다. 또 야다바 족의 족장 크리슈나를 만나기도 한다.(크리슈나에 관한 얘기는 앞서 앙코르의 종교 중 힌두교 편을 보기 바란다.)
그 후 큰아버지이자 왕인 드르타라스트라는 이 조카들을 불러 자기 아들들과 함께 왕국을 분할해 준다.(델리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의 아들 두료다나는 탐욕스러웠다. 그는 사촌인 유디스트라를 꾀어서 주사위로 하는 도박을 시작하고 속임수로 이긴다. 그 결과로 사촌들의 공동 아내인 드라우파디를 얻게 되었고 이에 만족하지 않은 두료다나는 지는 편은 형제와 함께 추방당하는 내기를 걸었고 결국 유디스트라는 지고 만다.
그 내기에 따라 판두의 다섯 형제들은 12년 간을 숲으로 추방되고 마지막 13년째는 1년 동안 신분이 노출되지 말아야 하고 만약 노출된다면 다시 12년을 그렇게 추방되기로 약속한다. 결국 성공적으로 자신들을 위장한 다섯 형제는 13년을 마치고 다시 두료다나에게 가 자신들의 왕국을 돌려달라고 하자 두료다나는 그것을 거절하게 되고 이에 따라 어마어마한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드디어 쿠루 평원에서 18일 동안의 전투가 벌어지고 이 전쟁에는 전 인도의 왕국, 그리스인, 박트리아인, 중국인들까지나 둘 중의 하나를 편들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쟁이었다고 한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끝에 결국 판두의 오형제들은 승리를 목전 앞에 둔다. 그러나 이때 둘째 아들 아르주나는 자신들과 같이 뛰어 놀던 사촌들의 죽음을 보며 비통함에 젖어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이때 그를 독려하는 사람이 바로 야다바족의 아르주나의 마차를 몰았던 족장 크리슈나다. 이 독려는 점점 설교가 되어가고 동료였던 크리슈나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간다.
이것이 마하바라타의 제 6권 내용이 되는데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내어 바가밧 기타라고 하며 이 내용은 훗날 전 인도 지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내용은 전투에 임해 나약해진 아르주나를 가르치는 것이지만 깊은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약한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이 위급한 때 어디서 그대에게 이런 나약함이 온단 말인가 ?......
슬퍼해서는 안될 자들을 슬퍼하면서도 그대는 지혜로운 말들을 하고 있도다. 산자를 위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다......
감각 대상들과의 접촉은 차가움과 뜨거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으킨다. 이들은 왔다가 사라지고 마는 무상한 것들이니 그것들을 참고 견디어라......
알지어다, 온 세상에 존재하는 그것은 파멸되지 않음을. 그 누구도 불멸의 그것을 파멸시킬 수 없도다. ......그(자아)를 살해한다고 생각하거나 살해된다고 생각하는 자는 둘 다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는 살해하지도 살해되지도 않는다.. 자아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생긴 일도 없은 즉 앞으로 생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불생, 영구, 항상 존재하는 이 태고적 존재는 비록 육체가 살해된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 그대가 할 일은 오직 행위 자체일 뿐 결코 그 결과가 아니다.
행위의 결과를 행위의 동기로 삼지 말며 행위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말라.......
성공과 실패를 평등히 여기며 집착을 버리고 행동하라......
결과를 동기로 삼는 자들은 가련하다......집착으로부터 욕망이 생기고, 욕망으로부터 분노가 생긴다. 분노로부터 미혹함이 일어나고 기억의 착란이 일어나며, 그것으로 인해 지성의 파멸이 온다....
그러나 애욕과 증오를 벗어나 있으면 자신의 통제 하에 감각 기관을 제어하고 청정함에 이르나니......
모든 욕망을 던지고 아무런 갈망 없이 행하는 사람, 내 것과 나라는 생각이 없는 자는 평안에 이르나니.......
죽음의 순간에서도 그런 경지에 확고히 서면 그는 브라흐만 열반에 가노라......
외계와의 접촉을 멀리하고 두 눈썹 사이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코를 통해 드나드는 들숨과 날숨을 평정히 하고 감각 기관과 마음과 지성을 제어하고 해탈을 최고 목표로 삼아, 항상 욕망과 공포와 분노가 사라진 성자야말로 해탈한 자다."
이렇게 아르주나를 가르치던 크리슈나는 나중에는 바로 자신이 창조, 보호, 파괴를 다 주관하는 삼신일체의 주인 비쉬누 신의 화신이란 것을 밝힌다.
"나는 세계를 파멸하는 다 된 시간으로서 여기에 세계들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대가 아니더라도 적군들 가운데 정렬되어 있는 전사들은 누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즉 일어나 영예를 얻어라. 적들을 정복하고 번성하는 왕권을 누려라. 이들은 오래 전에 이미 바로 나에 의해 죽임을 당했은 즉 그대는 단지 수단이 될 지어다.....
죽여라. 주저말고 싸워라......"
즉 아르주나가 죽이지 않아도 결국 비쉬누 신은 이 생명체를 다 거두어들인다. 삶과 죽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르마(법, 도리, 정의)가 중요한 것이니 그 다르마를 실천하기 위해 부도덕한 사촌들을 사정없이 죽이라고 마부이자 동료이자 또한 비쉬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그렇게 독려한다.
이렇게 벌어진 전투의 결과는 참혹했다. 오형제와 크리슈나 외에는 족장들은 다 죽었고 하스티나푸라는 통곡으로 뒤덮였다. 유디스트라는 왕위에 올랐으나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후 왕국을 잘 다스리던 유디스트라는 훗날 아르주나의 손자인 파리크시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섯 형제와 공동 아내인 드라우파디와 함께 히말라야산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바로 이 지상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알려진 메루산, 즉 수미산으로 들어가 신들의 도시로 들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