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리 교만을 부리는 것이요

“어찌 그리 교만을 부리는 것이요”

장조범지의 결심은 과연 대단했습니다. 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그는 차분히 경서를 공부해 나갔고 마침내 세상 그 어떤 이론도 논파할 수 있을 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리 여인의 남동생 장조범지는 그 긴 손톱을 지닌 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코끼리처럼 조금도 거침없이 인도 각지를 유람하다가 마침내 누이가 사는 동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내 누님은 사리라 하오. 오래 전에 임신을 하였으니 분명 자식을 낳았을 것이오. 내게는 조카뻘인데,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소?”

사람들이 답했습니다. “사리 부인의 아드님 말씀입니까? 지금 이 마을에는 없습니다.”

“어찌나 영특하던지 여덟 살 되던 해에 이미 모든 경서를 줄줄 외더니,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는 그와 토론이 붙으면 당해낼 사람이 없었지요. 스승을 만나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고 출가했는데 지금은 석가족의 성자(석가모니)인 고타마라는 분의 제자가 되어버렸소. 그를 만나려면 석가모니 계신 곳으로 가서 사리불존자를 찾으시오.”

사람들의 말을 들은 장조범지는 더욱 불쾌해졌습니다. 하지만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과연 그토록 똑똑한 조카를 제자로 삼은 사람은 과연 어떤 능력을 지닌 존재란 말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정당하고 합리적인 지혜보다는 사람의 눈을 홀리는 술수를 써서 조카를 꾀어간 것이 틀림없으리라 짐작하고 그는 부리나케 조카가 머물고 있다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장조범지, 부처님께 가르침 청해

지혜얻으려면 ‘모자람’ 먼저 인정

장조범지가 물어물어 도착했을 때 조카 사리불은 부처님의 제자가 된지 막 보름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마침 커다란 부채로 부처님에게 바람을 보내드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으로 사리불의 외삼촌 장조범지가 찾아온 것입니다.

예를 공손하게 갖추고 한쪽 옆으로 물러나 앉은 장조범지는 재빨리 석가모니 부처님을 살폈습니다. 한없이 편안해 보이는 표정 아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없이 답변이 술술 나올 것만 같고, 말꼬리를 잡으려 해도 잡힐 틈을 주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궁리하다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고타마시여, 나는 세상 그 어떤 이론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그 견해는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장조범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궁리 끝에 이왕이면 빙빙 돌려서 사람들이 자신의 궁색한 처지를 눈치 채지 못하게 하리라고 생각한 장조범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고타마시여, 나는 그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 견해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대답임을 간파한 부처님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결국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그냥 보통의 범부중생과 다를 바 없거늘, 어찌 그리도 도도하게 교만을 부리는 것이오?”

이제 장조범지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부처님의 제자 되기를 청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겠다며 손톱을 깎지 않던 장조범지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으며, 부처님 곁에서 부채를 부치던 조카 사리불도 스승과 외삼촌의 대화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대지도론 제1권)

승부를 가리는 건 세속에서나 할 일이겠지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깨끗하게 인정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인연입니다. 외삼촌 덕분에 조카 사리불도 아라한이 되었으니 참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