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가 나를 구제할 수는 없다

“다른 이가 나를 구제할 수는 없다”

미모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왕비는 종종 거울 앞으로 가서 제 모습을 비춰보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거울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그야 왕비님이시지요. 왕비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답니다.”

그녀는 언제나 거울 앞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고, 거울은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거울의 대답은 왕비에게는 만고불변의 진리였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부터 거울의 대답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왕비님, 왕비님도 물론 예쁘지만, 백설공주님이 왕비님보다 천 배는 더 예쁩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다 아는 백설공주의 고생은 이렇게 해서 시작됩니다.

이 동화를 뒤집어보면 백설공주의 계모인 새 왕비가 얼마나 예쁜 여인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피부에 새카만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지닌 일곱 살 계집아이를 의식해야 할 만큼 왕비는 제 나이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웠음에 틀림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선한방향 선택
선행을 통해 스스로 행복해져

그런데 도도하고 당당하고 성숙한 매력을 뽐내던 왕비에게 꽃잎 같은 소녀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어린 소녀의 미모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왕비는 그만 이치에도 닿지 않는 욕망을 품고 백설공주를 사지로 내몹니다. 그리고 백설공주의 비극은 결국 왕비 자신의 비참한 파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왕비는 왜 거울에게 물었을까요? 왕궁에는 멋쟁이 여인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터인데, 왜 그런 패셔니스타(fashionista)들에게 묻지 않고 하필 자기 소유의 거울에게 물었을까요?

아마도 가장 솔직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왕궁의 모든 사람들이 “왕비님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이구동성으로 찬탄하여도 왕비 본인은 그들의 대답이 ‘사실’이 아닌 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울이 말해주었으니까요.

세상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제 미모에 넋이 나갔던 중증 나르시시즘의 여인이 현실을 파악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백설공주가 천 배는 더 예쁘다”는 거울의 대답은 사실 “그런 거였어? 내가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이제부터 피어나는 저 일곱 살짜리 계집아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말이지?”라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왕비의 처절한 자기고백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왕비의 거울처럼, 자신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거울의 대답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장차 어떻게 할 것인지의 선택은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그 선택에 따른 행불행 역시 자신의 몫인지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선한 방향으로 행동을 할 것이니, 이것이 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일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대지도론>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 나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내 자신은 오직 내가 구제할 수 있다. 내 스스로가 선(善)을 행하는 것이 지혜이니, 이것이야 말로 자기를 가장 잘 구제하는 일이다.”

동화 속 아름다운 왕비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좋았는데,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하여 악업을 지었고 불행을 자초하였습니다. 왕비가 공주를 곱게 키우며 지혜롭게 선(善)을 행하였다면 틀림없이 거울은 “지금은 어린 백설공주님이 더 예쁠지 몰라도 왕비님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미인입니다”라고 답을 했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