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의 유래가르침의 보물창고 여는 주문
거의 대부분의 경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如是我聞 一時…)”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머리글은 아난존자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 반열반 이후 가섭 존자의 주도로 첫 번째 결집이 열릴 때 아난존자가 수많은 아라한들 앞에 나와서 부처님을 추억하고, 그 가르침을 기억해서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라고 암송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지도론>에는 아난존자가 그냥 저 혼자서 ‘여시아문’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의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서 반열반하려고 누우셨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석가족 출신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동생이고 25년 동안 부처님의 그림자가 되어 소리 없이 주변을 맴돌면서 보살펴온 시자 아난존자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어디를 가든지 아난존자는 그 뒤를 따랐고,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통해서 부처님을 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시자로서 그에게 쏟아질만한 모든 특혜를 아난존자는 거절하였습니다. 일에 있어서는 대쪽같이 원칙을 중시한 시자였지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혈육에 대한 뜨거운 정이 흐르고 있었기에 그는 부처님이 곧 반열반하실 것이라는 예고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습니다.
<디가 니까야>에는 비탄에 잠긴 아난존자를 부처님이 찾을 정도입니다.
“아난은 어디에 있느냐? 내가 찾는다고 전하라.”
부처님 열반 전 아난존자에게
직접 일러준 경전의 ‘키워드’
아난이 불려오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난아,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 울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과는 언젠가 반드시 헤어지며,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이렇게 슬픔을 달래주신 뒤에 그의 훌륭한 시자 살이에 대해 대중에게 고하십니다. 그리하여 아난은 부처님의 격려에 힘입어 비탄을 떨쳐버리고 유훈을 청해 듣는 일에 전념합니다. 그런데 <대지도론>에는 이 대목에서 아나율존자가 등장합니다. 부처님을 향한 혈육의 정으로 인해 마음이 침울해진 그에게 아나율존자가 이렇게 일러줍니다.
“그대는 부처님 법의 창고를 지킬 사람입니다. 여느 범부들처럼 근심의 바다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덧없는 법이니 슬퍼하지 마시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그대에게 법을 전해주셨는데 지금 이렇게 근심에 잠겨 있으면 그대가 해야 할 임무를 저버리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에게 가서 이렇게 물으십시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우리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하며, 험한 말을 일삼는 찬다카 비구와는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장차 경전의 첫머리에는 무슨 말을 두어야 합니까?’ 이와 같이 미래에 꼭 필요한 일들에 대해 부처님께 여쭙기 바랍니다.”
아나율존자의 충고를 들은 아난존자는 번민의 마음에서 깨어나 부처님께서 누우신 평상 곁으로 가서 자세한 사항들을 여쭙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그의 질문에 하나씩 친절하게 답하시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도 언급하십니다.
“아난이여, 내가 오랜 세월에 모은 법의 보물창고를 열려면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어느 쪽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의 숲속에 계시면서…’라고 말해야 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런 말씀으로 법의 보물창고를 여셨으며,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다 그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하고 외쳐서 굳게 잠겨 있던 보물창고의 문이 스르륵 열렸듯이, 진리의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창고를 여는 주문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입니다. 그것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친히 일러주신 키워드이니, 반드시 기억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