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선업 지어야겠습니다

“서둘러 선업 지어야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 과거불인 가섭불 시절에 형제 두 사람이 출가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제의 성향이 달라서 한 사람은 계를 철저하게 지키고 경을 외고 좌선에 열중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시주자를 구해서 보시를 권하고 온갖 복을 지었습니다.

그 후 몇 번의 윤회를 거쳐 석가모니 부처님 시절에 형은 매우 부유한 상인의 집에 태어났고, 아우는 새하얗고 몸집이 거대한 코끼리로 태어났습니다. 코끼리는 어찌나 힘이 센지 대적할 자가 없었습니다.

장자의 아들로 태어난 형은 일찍이 출가에 뜻을 두었고, 그리고 집을 떠나서 수행자가 된 뒤에는 치열하게 용맹정진하여 여섯 가지 신통을 얻은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아라한은 번뇌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생사의 윤회에서 시원스럽게 해탈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오로지 선하고 오로지 바를 뿐입니다. 그래서 아라한을 가리켜 세상의 복전이라고도 합니다. 이 이치를 알기에 사람들도 아라한에게는 앞 다투어 음식과 의복을 공양 올리며 복을 지으려고 안달입니다.

그런데 장자의 아들로서 출가한 형은 아라한이 되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늘 굶주리며 지냈습니다. 탁발을 하러 사람들의 거리를 돌아다니지만 발우를 채우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언제나 빈 발우를 들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불운한 아라한이었습니다.

한편, 흰 코끼리는 그 위풍당당한 모습과 엄청난 힘을 지닌 덕분에 일찍이 왕의 눈에 들었습니다. 왕은 코끼리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난 먹이를 아침저녁으로 풍족하게 대주었습니다.

세상 인연은 한결같지 않아서
지금 풍족해도 다음 기약 못해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라한은 탁발을 하러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발우에 음식을 채워주지 않았고, 그는 빈 발우를 들고 돌아와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왕의 코끼리 사육장을 지나다 온갖 기름지고 귀한 먹이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 코끼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라한은 그런 코끼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지만 너 역시도 허물투성이 삶이로구나.”

이 말이 코끼리에게 들렸던지 코끼리는 충격을 받아 음식을 끊더니 사흘 동안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사육사는 더럭 겁이 났습니다. 왕의 코끼리에게 변고라도 생기면 자기에게 추궁이 돌아올 것이 빤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라한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대체 왕의 코끼리에게 무슨 마술을 건 것입니까?”

그러자 아라한이 말했습니다.

“그 코끼리는 전생에 나의 아우였습니다. 가섭부처님 시절에 함께 출가하여 수행했는데, 그때 나는 오직 계를 지키고 좌선하고 경을 읽기만 하느라 보시를 행하지 않았고, 아우는 널리 시주자를 구해 다니며 보시의 선업을 지었지만 계를 지키거나 치열하게 수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아우는 흰 코끼리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아서 음식이며 온갖 것에 부족함이 없고, 나는 도만 닦느라 보시를 하지 않았기에 아라한이 되었어도 밥을 얻지 못하는 것이오. 이런 사정이 있어 코끼리에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대지도론 제7권)

극심한 가뭄에 세상이 다 굶주려도 용케 밥을 얻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부처님 아래에서 수행하여도 밥을 굶는 이가 있습니다. 아라한은 이제 윤회를 벗어났으니 다음 생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이번 생은 내내 굶주려야 하고, 코끼리는 지금 생에 더할 수 없이 풍족하나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결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세상 인연이란 것이 한결같지 않아서 이런 차이가 벌어지니 처지를 원망하기보다는 지금 서둘러 선업을 지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