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버리고 지혜 갖춘 붓다

번뇌 버리고 지혜 갖춘 붓다

가끔 강의 도중에 이렇게 묻습니다.
“부처님은 아라한일까요? 아닐까요?”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어떤 이는 펄쩍 뜁니다.
“감히 부처님을 아라한이라고 생각하다니 강사가 제정신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라한이 부처님보다 격이 한참 떨어지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답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부처님도 아라한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아라한에서 멈추었고,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은 아라한이면서 붓다이기도 한 분입니다.

아라한이 산스크리트어라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겁니다. 아라한(阿羅漢, arhat)은 산스크리트어 아르핫(arhat)의 단수 주격으로, 한문경전에서는 아라가(阿羅呵)라는 단어로 등장합니다. 특히 가(呵)는 아(啊 , 哦) 발음으로도 표기되니까 ‘arhat’을 ‘阿羅呵’라고 한문으로 쓰고 ‘아라아(아라하)’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사전적인 설명은 머리가 아프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대지도론에서 아라한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찾아보기로 하지요. 먼저, 아라한은 도적을 죽인다(殺賊)는 뜻입니다. 흉악한 범죄자, 난폭한 자를 상대해서 그를 물리치려면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붓다에 대한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인욕의 투구를 쓰고, 정진의 갑옷을 입고,
계율의 준마에 올라타고 선정의 활에 지혜의 화살을 얹은 붓다는
두 개의 적을 쳐부수니 외부의 적은 죽음이라는 마군이요, 내부의 적은 번뇌라는 도적이네.
그래서 아라하(아라한)라 불린다네.(대지도론 제2권)

붓다가 된다는 것은 이런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마냥 노글노글하고 부드럽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대단한 인내와 용기를 갖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질고 착한 사람을 가리켜 ‘부처님 가운데 토막’ 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이렇게 중무장할 줄도 아는 이가 바로 붓다입니다.

아라한의 두 번째 뜻은 태어나지 않는다(不生)는 뜻입니다. 더 이상 윤회하지 않으니 무명을 뽑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라한의 세 번째 뜻은 공양 받을 만한 사람(應供)이란 뜻입니다.

아라한이란 말에는 “…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응(應)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의 자글자글 어지러운 번뇌를 벗어버렸고 지혜를 완전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양과 존경을 받을 만하며, 그럴 가치와 자격을 갖춘 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아라한이 맞습니다. 이처럼 아라한이란 이름을 얻는다는 건 만만한 차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에 가보면 아라한을 모신 집(나한전)은 대웅전보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존경을 덜 받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아라한도 붓다도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삼독을 모두 벗어버린 점은 같지만, 아라한에게는 여전히 세세생생 몸에 익혀온 버릇이 남아 있어 그것까지 벗어버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습(習)이 남아 있다, 습기(習氣)가 배어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향을 담은 그릇에서 향을 이미 비웠으나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풀이나 나무를 불로 태워 나무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도 숯과 재가 남아 있는 것과 같다”라고 대지도론에서는 아라한을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번뇌를 모두 끊었다 해도 버릇까지 완벽하게 고치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버릇도, 그렇지 못한 버릇도. 이번에는 전생의 버릇이 남아 있는 사리불과 필린다밧차를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