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아승기와 성불‘본래부처’는 중생 최고의 위안
아승기(阿僧祇, asamkhya)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인도에서는 숫자의 단위로 쓰이는데, 우리의 숫자 관념을 훌쩍 뛰어넘는 아주 큰 단위입니다.
경전에는 한 사람이 부처가 되기까지는 3아승기라는 세월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승기를 세 번은 거쳐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일단 아승기라는 시간단위가 대체 어느 정도의 세월을 이야기하는지 봐야겠습니다.
“아무리 수(數)에 해박하다고 해도 궁극의 수를 알 수는 없을 텐데, 바로 그 궁극의 수가 1아승기입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고, 그 둘과 둘을 곱하면 넷이 되고, (중략) 열에 천을 곱하면 만이 되며, 천에 만을 곱하면 억이 되고, 천만에 억을 곱하면 나유타(那由他)가 되고, 천만에 나유타를 곱하면 빈바(頻婆)가 되고, 천만에 빈바를 곱하면 가타(迦他)가 되며, 가타를 지나면 아승기(阿僧祇)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3아승기를 헤아리는데, 즉 첫 번째 아승기를 채우면 다시 두 번째 아승기를 헤아리고, 두 번째 아승기를 채우면 세 번째 아승기를 헤아립니다. 1에서 세어나가 100을 다 세면 다시 1에서부터 세어나가는 것처럼 그 수를 헤아립니다. 이처럼 보살도 1아승기를 지나면 다시 숫자 1로부터 시작합니다.”(<대지도론> 제4권)
상상할 수 없는 세월동안 수행
숫자에 질려 지레 포기할 수도
십천(十千)에 만(萬)을 곱해야 억(億)이 되기 때문에 ‘천에 만을 곱하면 억이 된다’는 대지도론의 계산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유타에 대해서 “천만이라고도 하고, 천억에 해당한다고도 하며 이설이 많다”(홍법원 편, <불교대사전> 328쪽)라는 사전의 모호한 설명도 있습니다.
보살이 부처가 되려면 이 같은 아승기를 세 번은 거쳐야 한다는데, 첫 번째 아승기(1아승기)에는 자신이 부처가 될지 어떨지를 모르는 채 지나고, 두 번째 아승기(2아승기)에는 마음으로는 자신이 성불하리라고 알지만 입으로 차마 ‘내가 성불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며, 세 번째 아승기(3아승기)에 들어서야 마음으로도 또렷하게 자신의 성불을 확신하고,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이 다음 세상에 성불하겠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최초의 아승기 동안에 여자의 몸을 영원히 버렸고, 두 번째 아승기 기간에 바로 그 유명한 성불의 수기를 받았습니다.
즉, 연등부처님께 일곱 송이 파란 연꽃을 올리고, 사슴가죽 옷을 진흙에 깔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머리칼을 펼쳐서 부처님이 진흙탕을 밟지 않도록 하고서야 연등부처님으로부터 그 자리에서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니 석가모니라 불리리라”는 기별을 받는 것이 바로 2아승기 기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수기를 받고도 다시 한 번의 아승기란 세월을 지나도록 오직 착하고 바르고 성스러운 행동을 쌓아 온 뒤에야 인간 세상에 부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대지도론> 제4권).
대지도론의 설명을 보자면, ‘이런저런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어야겠다’는 건 처음부터 품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내가 굳건한 수행을 이어나간다 해도 그 긴 세월 어느 시점엔가는 틀림없이 크게 흔들리고 방황하다 뒤로 물러서기도 할 것인데, 나의 이런 행동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인과법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리고 “나의 이 모든 수행이 끝내는 성불로 이어지이다”라는 서원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상을 불허하는 세월을 석가모니 부처님이란 분은 어떻게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오셨을까요? 아무튼 백 년도 살기 힘든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저 입이 벌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본래부처’라거나 ‘한 생각 깨달으면(돌이키면) 부처’라는 대승과 선의 주장이 얼마나 기가 막힌 반전인지 모릅니다. 3아승기라는 숫자에 질려 지레 포기하려는 나 같은 중생에게 안겨주는 최고의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