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에 올라간 왕 이야기시비왕, 보시의 종결자
눈과 발이 붉은 비둘기 한 마리가 다급하게 시비왕의 품으로 날아왔습니다. 새는 왕의 겨드랑이 밑으로 숨어들어 오들오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매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요. 제발 날 숨겨 주세요.”
곧이어 매 한 마리가 날아와 가까운 나무 가지 위에 앉더니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 비둘기를 주십시오. 그건 내 먹이입니다.”
그러자 시험에 든 줄 모르는 왕이 매에게 말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숨어든 비둘기를 네게 줄 수는 없다. 나는 모든 생명을 받아 들여 괴로움에서 구해주겠노라고 다짐한 사람이다. 대신 네가 먹고 싶은 걸 말해라.”
기다렸다는 듯 매가 대답했습니다. “갓 잡은 따뜻한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금방 잡아서 온기가 남아 있는 싱싱한 고기라면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왕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한 생명을 살리자니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고, 한 생명의 목숨을 지켜주자니 다른 생명은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제 손으로 다리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는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뜻하고 신선한 고기인 건 맞지만 이게 어디 비둘기만큼 무게가 나가겠습니까? 내 식사거리를 빼앗았으니 딱 그 만큼의 고기를 내주셔야지요.”
비둘기 살리려 목숨 맞바꿔
생색내면 궁극의 보시 퇴색
결국 왕은 저울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매의 말대로 비둘기를 올려놓은 저울의 접시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왕은 사람을 시켜 자신의 살을 더 베어서 접시 위에 올려놓게 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가 놓여 있는 접시는 올라올 줄 몰랐습니다. 결국 두 다리 살은 물론이요, 자신의 온몸의 살을 다 베어내서 달았습니다. 그래도 비둘기의 무게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결국 커다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아예 저울 잡시 위에 올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비틀거리며 올라가려는 왕을 보고 매가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일을 만드십니까? 그냥 저 비둘기를 내게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왕은 숨이 끊어질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내게 와서 의지한 비둘기를 어찌 네게 내줄 수 있겠는가. 나는 윤회를 거듭한 이래 누군가를 위해 이로운 일을 한 적이 없다. 일찍이 불도를 구하고자 다짐했으니, 이제 이 덧없는 몸을 내던져 그 뜻을 이루고자 한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도 두려움이 솟았을까요? 왕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근심과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있는 생명들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찌 이 사소한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려 하는가. 지혜와 정진과 지계와 선정을 갖추었으면서도 나는 이런 고통에 시달리거늘 지금 지옥에 빠져 있는 이는 의지할 선업이 하나도 없지 않던가.”
매는 왕의 마음에 조금도 후회가 일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을 크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시비왕의 헌신에 감동을 받은 매는 말했습니다.
“모든 생명을 위해 부처가 되겠노라는 왕의 다짐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면 그 몸은 저절로 회복될 것입니다.”(대지도론 제4권)
이 같은 궁극의 보시가 시비왕을 붓다로 완성시켰습니다. 왕의 몸은 예전 그대로로 돌아갔습니다. 애초 시험하느라 벌어진 일이었기에 비둘기도 매도 없었습니다. 제석천은 붓다의 출현을 확신하고 행복에 겨워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경전 속 이야기 중에 보시의 종결자로는 시비왕을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단, 제 목숨을 다 내놓더라도 만에 하나 “내가 그 정도로 보시한 사람이거든.”이라며 생색을 낸다면 궁극의 보시에는 미치지 못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