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약속“진실한 말은 으뜸가는 계율”
“연주회 열리면 알려주세요. 꼭 갈게요.”
음악가 한 사람과 첫 대면에서 이렇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분은 이후 연주회가 열릴 때면 메일로 알려주었고, 처음 몇 번은 시간이 맞지 않아 연주회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 다시 연주회 소식을 알려왔기에 작정을 하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연주회장으로 가는데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고, 올 때는 버스를 기다려야 해서 거의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비바람은 왜 그리 심하게 몰아치던지….
돌아오면서 하루가 그냥 날아가 버린 것이 몹시 속상하기도 했지만 무심코 던진 나의 말을 믿었던 그 분에게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 이후 상대방과 주고받는 의례적인 말 한 마디에도 신중해졌습니다.
사실 한 마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도 좀 갑갑한 일이기는 합니다. “나중에 차 한 잔 마시자”라거나 “내가 한 번 찾아갈게”라는 인사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한 마디 말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리는 늘 무심코 내뱉습니다. 그래서 늘 문제입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아주 소중한 약속이 되기도 하며, 사람에 대한 신뢰는 한 마디 말에서 시작하고 무너집니다.
따라서 무슨 대단한 계율을 지키느라 목숨을 걸기 이전에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만 해도 그게 바로 지계바라밀다(계율을 완벽하게 지키기)라고 <대지도론> 제4권에서는 말합니다.
거지와 약속 지킨 수타수마왕
의례적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
거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서 왕에게 딱 7일 간의 시간 여유를 얻은 수타수마왕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어느 이른 아침에 성 밖의 숲으로 나들이를 하려는 왕에게 거지가 다가와서 구걸을 했습니다. 왕은 나들이에서 돌아오면 거지가 바라는 걸 다 주겠노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왕이 동산에서 노닐 때 하필이면 거대한 날개가 달린 녹족(鹿足)이라는 귀신에게 납치당하고 맙니다. 붙잡혀온 사람은 왕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포로들이 겁에 질려 사색이 되어 있는 가운데 왕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너무나 서럽게 울기에 녹족귀도 이상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요,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이거늘, 어린애도 아니고 왕이란 자가 지금 울어도 너무 울지 않소?”
그러나 왕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내가 지금 죽음이 두려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아침에 성문 밖에서 걸인과 약속을 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가 얼마나 내게 실망했을지 생각하니 신뢰를 저버린 것이 두려워 울고 있는 것입니다.”
녹족귀는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한 번 시험해보고자 제안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7일의 여유를 주겠소. 궁에 돌아가서 지금부터 7일 동안 보시를 베푼 뒤에 꼭 돌아와야 하오. 약속을 어기면 내가 또다시 날아가서 채어오겠소.”
그리하여 왕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궁으로 돌아와서 무엇보다 가장 먼저 거지를 불러 약속한 보시를 베풀고, 곧이어 태자에게 왕위를 넘긴 뒤 7일 째 되는 날에 궁을 나섰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왕을 말리며 저 녹족귀신이 조금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겠다고 하지만 왕은 약속을 했기에 지켜야 한다며 뿌리칩니다.
설마 했지만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뚜벅뚜벅 죽음의 동굴로 걸어 들어온 왕을 보고 녹족귀왕은 무릎을 꿇습니다. 덕분에 붙잡혀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목숨을 구했으며, “진실한 말은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요, 으뜸가는 계율”이라는 저 유명한 시구도 바로 지계를 완성한 왕에게서 나온 노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