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어떤 번뇌인지 잘 파악해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성도 직전, 악마와의 한판 승부 장면을 읽을 때면 내 머릿속에는 멋진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이 장면에서 눈에 보이는 등장인물은 붓다가 되기 직전의 싯달타 태자 한 사람뿐.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함께 정진을 격려하며 수행하던 다섯 명의 도반들도 등을 돌리고 떠나가고, 우유죽을 올린 수자타도 떠나가고, 방석으로 삼으시라며 보드라운 풀을 올린 상인들도 떠나간 자리.

하지만 보리좌에 앉은 싯달타 앞에 무시무시한 존재가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마(魔)입니다. 마는 마라(魔羅, Mara), 파순(波旬, Papiyas)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천사는 하늘, 악마는 땅(지옥)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마는 하늘의 존재입니다.

경전에 등장하는 마(魔) 혹은 마왕(魔王)은 착한 일을 하려는 자를 방해하고, 수행을 완성하려고 용맹정진하는 자를 방해해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는 자입니다. 대지도론 제5권에서는 “혜명(慧命)을 빼앗고 도법과 공덕과 선의 근본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마라고 부른다”라고 정의내립니다.

이런 마가 보리좌에 앉아서 막 성도하려는 싯달타 태자 앞에 등장한 것입니다. 힘이 어찌나 센지 그냥 마가 아니라 마왕(魔王)인 그는 가장 먼저 이렇게 보살(싯달타)을 어릅니다.

“그토록 고행한답시고 몸을 혹사하더니 지금 당신 꼴을 좀 보시오. 딱 죽게 생겼소.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니오? 착한 일도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이제 더 고생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궁으로 돌아가시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하늘에 제사지내며 공덕을 쌓으면 그게 남는 장사요.”

싯달타 앞에 나타난 마왕

10가지 무기 들고 총공격

싯달타는 묵묵부답입니다. 그러자 마왕은 약이 오릅니다. 좋은 말로 해서는 먹혀들지 않으니 겁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무리들을 부릅니다. 대도(大道)를 걷는 보살은 홀로이지만, 소인배 마왕은 늘 무리를 거느리고 다닙니다. 이들을 가리켜 마군(魔軍)이라 합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무기를 가지고 나타나서 싯달타 태자를 향해 총공격합니다.

저들 군대를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첫 번째 군대는 욕망, 두 번째 군대는 근심, 세 번째 군대는 목마름과 굶주림, 네 번째 군대는 사랑, 다섯 번째 군대는 수면, 여섯 번째 군대는 두려움, 일곱 번째 군대는 의심, 여덟 번째 군대는 독을 머금음(含毒), 아홉 번째 군대는 이양과 허망한 명성에 집착하는 일, 마지막 열 번째 군대는 남을 얕보고 자신을 높임”입니다.

이 열 가지 마군은 <숫타니파타>에 등장하는데, 대지도론 제5권에서는 <잡법장경(雜法藏經)>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군은 정신없이 공격해오지만 싯달타 태자는 차분하게 저들의 정체를 밝혀냅니다. 그 정체를 밝혀내는 것만으로 마군은 겁을 먹고 물러갑니다.

그런데 성도 직전 붓다를 공격한 마군치곤 그 이름이 흥미롭습니다. 이건 바로 보리수 아래 홀로 결가부좌한 싯달타가 내면의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성도를 방해하는 온갖 번뇌들을 말끔히 털어내 보니 바로 저런 번뇌들이었음을 은유로 밝혀낸 것입니다.

싯달타가 마지막으로 털어낸 이들 번뇌(마군)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나타나 우리의 평온한 마음을 뒤흔들고 지혜롭게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번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 열 가지 몹쓸 녀석들 때문에 보리좌에 앉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 때문에 어떤 일을 완성하려 해도 도중에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울 일을 반복하고, 다시 아등바등 살아가게 됩니다.

번뇌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밀려들어와도 담담하게 물리친 싯달타처럼, 휘말리지 말고 어떤 번뇌인지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번뇌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