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고리 만들지 않은 부처님

“업의 고리 만들지 않은 부처님”

초기경에선 ‘피할수 없음’ 표현

억울함 앙갚음 않는 모범 보여

경전을 읽어보면 부처님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숱한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몸에 큰 병이 있거나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부처님을 한 번 뵙거나 부처님에게 뿜어져 나오는 광명에 닿기만 해도 병과 장애를 극복하고 상처가 낫는다고 합니다(대지도론 제8권).

그리고 이처럼 능력과 위엄을 갖추게 된 데에는 세세생생 자신의 신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인욕하고, 정진하고, 선정에 들고, 무너지지 않는 지혜를 닦았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대지도론 제9권). 육바라밀을 완벽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그런 빼어난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지도론에서는 이어서 다음의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처럼 위대하다는 부처님도 그 일생에 걸쳐 힘든 일을 겪지 않았던가? 그렇게 능력이 있는 분이 어찌하여 자신의 불행을 사전에 막지는 못했단 말인가?”라는 것이지요. ‘힘든 일’이라고 슬쩍 에둘러서 표현했지만 대지도론 한문본에는 ‘죄보(罪報)’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본다면, “만약 부처님의 신통력이 한량없고, 위엄과 덕망이 태산처럼 높아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면, 어째서 아홉 가지 죄의 과보를 받게 되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홉 가지 죄의 과보는 흔히 9뇌(惱)라고 해서 ‘아홉 가지 괴롭힘’이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대지도론에 의하면 부처님이 아홉 가지 괴롭힘을 받는 것도 과거 어느 생에선가 지었던 악업(죄)이 무르익어 그 과보를 이번에 받게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아홉 가지를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브라만 여인 손타리의 비방을 받았고, 오백 아라한 역시 비방을 받은 일.

둘째, 브라만 여인 전차(?遮)가 자기 배에 나무 그릇을 둘러서 임신한 것처럼 꾸며 부처님을 비방한 일.

셋째, 데바닷타가 산을 밀어서 부처님을 압사시키려다 부처님의 엄지발가락에 상처를 입힌 일.

넷째, 나무토막이 튀어나와 다리를 찔린 일.

다섯째, 비유리왕이 병사를 일으켜 석가족을 죽일 때 부처님이 두통을 앓으신 일.

여섯째, 아기달다 바라문이 자신의 집으로 부처님을 초청했을 때 말 먹이용 보리를 잡수신 일.

일곱째, 냉풍으로 인해 등이 아프신 일.

여덟째, 6년 동안 고행하신 일.

아홉째, 바라문 동네에 걸식하러 들어가셨을 때 밥을 얻지 못하고 빈 발우인 채로 돌아오신 일.

대지도론에서는 이어서 몇 가지를 덧붙여 나열하는데, 동지를 전후한 8일 동안 밤중에 차가운 바람이 대숲을 휩쓸 때에 세 벌의 옷으로 추위를 견디신 일과 병환으로 열에 시달릴 때 아난이 부처님 뒤에서 부채질을 해드려야 했던 일 등등입니다.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천상의 신들까지도 스승으로 모시는 절대자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이런 괴롭힘이 따라다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석가모니도 인간”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전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좀 다른 해석을 보입니다. 가령 초기 경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런 괴롭힘을 당한 것은 ‘사실’이요, 하지만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달은 존재이기 때문에 업의 법칙은 이토록 엄격해서 피할 수 없음을 일러주고, 부처님 자신이 억울하다며 앙갚음을 하려 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 업의 연쇄 고리를 만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이처럼 행동하도록 모범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승경전에서는 이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