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견뎌야 하는지

‘보복’은 괴로운 사람에게 괴로움 더 보태

괴롭히면, ‘내 친구요 스승’이라 생각
보살, 견디며 뜻 이룰 때까지 나가야

<대지도론>제14권에는 보살이 왜 견뎌야 하는지, 혹은 어떤 마음으로 견뎌야 하는지가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첫째, 보살은 자애의 마음(慈心)을 닦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생명체는 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 괴로움이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런 괴로운 이의 행동거지를 참지 못해서 그에게 보복을 하면 괴로운 사람에게 괴로움을 더 보태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대지도론>에서는 말합니다. “어찌 수행자가 그들에게 괴로움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건 그야말로 종기에 칼을 대고 흠집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둘째, 보살은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서 열반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침해당하면 화를 내다가 조금 이익이 생기면 기뻐하고, 두려운 곳에서는 겁을 먹는, 생사 흐름을 따르는 중생과는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이렇게 맹세해야 합니다. “비록 번뇌의 씨앗을 아직 다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내 자신을 잘 타일러서 인욕을 닦으리라. 남이 나를 해치더라도 화내지 않고, 남이 나를 떠받들더라도 기뻐하지 않으며, 그 어떤 괴로움과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며, 오직 저 모든 생명체를 위해 큰 자비심을 일으키리라.”

셋째, 보살은 누군가 와서 괴롭히면 ‘이 사람은 내 친구요 내 스승이니 더 친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가 나를 괴롭히는 덕분에 나는 인욕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부처님은 저 숱한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는 윤회의 과정 속에서 내 부모형제였을 수도 있고, 앞으로도 그리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이라면 이 말씀을 기억해서 나를 해치려는 그 누구에게도 분노를 품거나 해치려고 마음먹지 말아야 한다고 대지도론에서는 말합니다.

다섯째, 누군가 화를 내며 나를 괴롭힐 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좋은 성품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나를 괴롭힌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화를 내지는 말자.’

여섯째, 심지어 보살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여겨서 ‘세상 사람들이 웃을 날이 얼마나 되던가. 만일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며 즐거워한다면, 내가 참자. 그가 행복하면 된 것이다. 내 본래 발심한 것이 바로 중생들을 행복하게 해주자는 것 아니었던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참을 수 있겠습니까? 보살이라면 그리 해야 한다고 <대지도론>에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보통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어이구! 그런 건 당신이나 해요. 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나도 그러니까요. 하지만 불자로서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는 이미 ‘보살’입니다. 보살이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합니다. 참고 견디면 보살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보살이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난 보살로 살겠다고 말한 적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라는 세계에 고개를 살짝 들이민 이상, 그리고 대한민국 도처에 있는 절의 문고리를 한 번이라도 만져본 적이 있는 이상, 그 사람은 보살입니다.

“그럼 죽을 때까지 참고 견디기만 하란 말이냐?” 이렇게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웅크리고 앉아서 날아오는 세상의 돌멩이를 다 맞고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감정싸움에 나를 소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방과 칭찬은 바람 같은 것이니, 그에 휘둘리지 않고 내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인욕이란 이것이며, 보살이란 묵묵히 견뎌서 자신의 뜻을 이룰 때까지 뚜벅뚜벅 나아가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