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바라밀

복덕의 문 들어가 지혜의 문 두드려야

반야바라밀 성취에 필요한 것이 선정
정진 없으면 선정.반야 모두 어려워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복덕의 문과 지혜의 문입니다.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인욕을 행하는 것은 복덕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크고도 밝은 지혜인 마하반야바라밀을 얻는 것은 지혜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지혜의 문을 열고서 마하반야바라밀을 낳으려고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선정입니다.

걸어 다니고 노래하고 춤추고 밥 먹는 모든 순간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경지에 들어야 제대로 된 참선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쉬지 않고 흔들고 흔들리는(動) 세상에 살면서 마음이 한 군데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경지(靜)와 하나가 된다(一如)는 것은 웬만큼 단련이 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달인의 경지입니다.

선정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선정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정에는 정진이 필수입니다. 정진이 없으면 선정도, 반야도 얻기 어렵다는 것이 대지도론의 생각입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챘을 것입니다. 슬그머니 육바라밀 이름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가장 무게가 실리는 항목이 ‘정진’입니다. 정진하느냐 정진하지 않느냐-이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건 보살로서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겠느냐 중도에 적당한 곳에서 짐을 부리고 여행을 끝내느냐의 차이입니다.

독일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 자주 듣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가려다 못 갔으니 너만큼은 그곳으로 가거라.”

마침내 ‘나’는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한 뒤 곧바로 신혼의 아내와 동경해마지 않던 도시 곰스크로 떠납니다. 그곳으로 떠나는 기차는 많지 않았고, 좌석표는 비쌌습니다. 그래도 ‘나’는 용감하게 그 기차에 오릅니다.

그런데 정작 아내는 ‘나’와 달랐습니다. 아내는 여행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기차가 어느 간이역에 멈춰 서자 ‘나’는 풀이 죽은 아내를 달래주려고 기차역 주변으로 잠시 산책하러 나갑니다. 아내는 행복해졌고, ‘나’는 행복해진 아내를 보며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하지만 저 멀리 기차역에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기적을 울립니다. 이제 곧 떠날 테니 승객들은 어서 승차하라는 신호입니다.

‘나’는 서둘러 뛰어가려고 하는데 아내는 자꾸만 ‘나’를 주저앉힙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그냥 여기도 좋은데….”

그렇게 해서 ‘나’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타지 못하고 그곳에 안주하고 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도중에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짐을 풀고 정착합니다. ‘이 정도라도 어딘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지.’ 이렇게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곰스크에 대한 동경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간이역에 내려 짐을 풀어 행복하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곰스크를 가슴에 품은 사람은 기차에 타야 합니다. 기적을 울리며 막 떠나려는 기차를 어떻게든 세워서 올라타야 합니다. 간이역은 보시와 지계와 인욕을 실천하는 차원이고, 곰스크는 불도의 완성입니다. 기차는 선정이요, 기차에 타려는 ‘나’는 보살이요, 간이역의 정취에 안주하지 않고 떠나려는 기차에 달려가 올라타는 것은 정진입니다.

그런데 <대지도론>에서는 두 가지 차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복덕을 얻는 데에서 멈추겠는가. 아니면 그 복덕을 지혜로까지 이어가겠는가.

보살이라면, 불자로서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면 복덕의 문을 열고 들어간 뒤 지혜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이제 정진바라밀의 설명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