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이웃에게 행복한 열반을 열어주고 싶은 사람

보살은 이웃에게 행복한 열반을 열어주고 싶은 사람

변치않고 즐거운 열반은 지혜에서 생겨

진실한 지혜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야

어느 사이 <대지도론> 제17권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대지도론>이 모두 100권으로 이뤄져 있으니 이제야 겨우 문지방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이야기인 육바라밀에 관한 내용이 앞부분에 집중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분량으로만 따진다면 앞부분이지만, 비중으로 말한다면 제법 진도가 나간 셈입니다.

이제 선(禪)바라밀입니다. <대지도론>은 <대품반야경>의 한 문장으로 선정바라밀의 문을 엽니다. “어지럽지 않고 맛들이지 않음에 의해 선바라밀을 갖추어야 한다.”

<대지도론>에서는 이 가운데 ‘어지럽지 않고’라는 말에 대해 의문을 일으킵니다. 즉, “보살이란 모든 중생을 이끌고 피안으로 건네주느라 수고해야 하는 존재이거늘 어째서 숲속에 한가롭게 앉거나 산속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제 한 몸만 돌보느라 중생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입니다.

이런 반론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보살이 부처가 되기 위해 걸어가야 하는 지침으로 가득한 종교입니다. 그만큼 보살의 마음가짐을 중요시합니다. 보살은 자신의 수행을 이웃의 행복과 똑같이 여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수행을 한다고 조용한 곳에 들어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선은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이루어지는 수행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잡한 시장통에서도 참선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선이라고 하지만, 그건 보통 어려운 경지가 아닙니다. 그 정도의 경지에 다다르려면 일단 조용한 곳에 한적하게 머물며 선정의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아귀다툼을 벌이며 살아가는 중생을 한 순간도 저버리지 않아야 하는 보살. 그런데 어지럽지 않은 선정의 경지에 들어가야만 하는 보살.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대지도론>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점을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대지도론>에 따르면 보살은 일단 중생들에게서 떨어져 조용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걸 인정하는 눈치입니다.

“보살이란 그 몸은 비록 중생들과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는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는 홀로 정진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을 잠시 떨어뜨린다 해도 “아, 시원하다! 이제야 좀 살 맛이 난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세속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있지만 나는 여기서 얻은 힘으로 속히 저 세상 속으로 들어가겠다”라고 마음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지도론>에 따르면, “잠시 집안일을 쉬면서 약을 먹고 몸을 잘 보살핀 뒤 기력을 회복하면 예전처럼 다시 집안일이나 사업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조용한 곳에서 선정을 구하는 것도 그와 같으니 선정의 힘으로 지혜의 약을 먹고 신통의 힘을 얻어 다시 세상에 뛰어들어 부모 노릇, 스승이나 제자 노릇을 다시 맡아 저들을 피안으로 인도해야 한다”라는 원리입니다.

피안은 행복하고 변함없고 즐거운 경지입니다. 그 경지를 맛보지 못한 이웃을 생각하니 보살에게 연민의 마음(대비심)이 밀려옵니다. 그냥 세상에 나아가 보시를 권하며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적당한 행복을 얻는 방법을 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쉽게 변하고 무너집니다. 보살은 이웃에게 변하지 않고 행복하고 즐거운 경지(열반)를 열어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변하지 않고 즐거운 열반은 진실한 지혜에서 생기고, 진실한 지혜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선정에서 생긴다”(대지도론 제17권)는 이치를 알기에 보살은 선정을 스스로도 닦고 이웃들에게도 권합니다. 이것이 보살이 닦아야 할 선바라밀의 시작입니다.